옛날 어떤 범지1)가 있었다. 그는 나이 20세였는데 타고난 천재(天才)로서, 크고 작은 어떤 일이라도 그 눈을 스치기만 하면 모두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 총명만을 믿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천하의 기술은 기어코 다 배우고야 말 것이다. 만일 한 가지 기예라도 통달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밝게 통달했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맹세하고 그는 이러저리 돌아다니며 유학하면서 어떤 스승이고 찾지 않은 데가 없었다. 여섯 가지 기예와 잡술·천문·지리·의약, 그리고 무너지는 산과 흔들리는 땅을 진압하는 법, 도박·장기·바둑·기악(妓樂)·박찰(搏撮)과 옷 재단하기와 비단에 수놓기, 고기 썰기와 음식 만들기 등, 인간의 일치고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중략)
이리하여 천하의 열여섯 큰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상대에게 명령하여 기술을 겨루고는 마음대로 말하고 혼자 다녀도 아무도 감히 상대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 마음은 잔뜩 교만해져서 이 천지 사이에 누가 감히 나를 당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멀리서 이 사람을 보시고는 제도할 수 있음을 아시고, 곧 신통으로 한 사람의 사문으로 변화하여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들고 그의 앞으로 가셨다.
그 범지는 원래 그 나라에는 도법이 없고 사문(沙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인지 괴상히 여겨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물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조금 있다가 사문이 오자 범지가 물었다.
"어떤 왕족도 그대 같은 이를 보지 못하였고, 어떤 옷차림도 그런 차림새는 없었으며 아무리 종묘(宗廟)의 특이한 기물(器物)이라 해도 그런 그릇은 보지 못하였소. 그대는 무엇 하는 사람이기에 형상과 옷차림새가 보통 사람과 다릅니까?"
사문이 대답하였다.
"나는 몸을 다스리는 사람이오."
그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을 몸을 다스린다고 합니까?"
그 때 사문은 그전에 배운 것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활 만드는 사람은 뿔[角]을 다루고 뱃사공[水人]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루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제 몸을 다스린다.
비유하면 저 무거운 바위는 바람이 옮길 수 없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뜻이 무거워 비방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비유하면 저 깊은 못물이 맑고 고요하며 투명하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도(道)를 듣고는 마음이 깨끗해짐을 좋아한다네.
그 때 사문은 그 게송을 마치고 허공으로 날아 올라, 다시 부처님의 몸을 나타냈는데 32상(相)2)과 80종호(種好)3)의 광명이 환히 트여 온 천지를 두루 비추었다. 부처님께서 허공에서 내려와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도덕과 변화는 몸을 잘 길들인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때 그 사람은 온몸을 땅에 던지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원컨대 몸을 길들이는 방법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5계(戒)·10선(善)·4등(等 : 無量心)·6도(度 : 波羅蜜)·4선(禪)·3해탈(解脫)을 닦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다 몸을 다스리는 법이다. 대개 활 만들기·배 부리기·목수와 또 여섯 가지 기예 따위의 기술은 다 겉만 꾸미고 치장하는 것으로서, 몸을 방탕하게 하고 마음을 방자하게 하여 나고 죽음의 길에서 윤회하게 하느니라."
범지는 이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면서 믿고 이해하여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사문아."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져 곧 사문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거듭 그를 위하여 4제(諦)4)와 8해탈(解脫)의 법을 설명하셨고 그는 곧 아라한의 도를 증득하였다.
-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제2권 명철품(明哲品)
주(註) ----------------------------------
1) 범지(梵志) ; 범어 Brahmacarin. 범사(梵士)라고도 쓴다. 정예(淨裔), 정행(淨行)이라 번역한다. 바라마문의 생활 가운데 4기(期)가 있다. 이것은 그 제1기로 스승에게 가서 수학하는 동안을 말한다. 이 시기는 8세부터 16세까지, 혹 11세부터 22세까지이다. 이 기간에는 스승에게 가서 익힌 음식을 피하고 사치를 금하고, 모든 정욕을 멀리하며, 매일 아침에 나가 밥을 빌어다 스승에게 바치고, 스승이 먹고 난 뒤에 자기가 먹는다. 나무하고, 물 긷고 스승의 이부자리를 펴고 개는 등 여러 가지 고행을 하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성지(聖智)에 이르기 위해 정진한다. 이 기간을 마치고는 집에 가서 결혼하여 살다가 다시 숲속에 가서 공부하면서 여러 곳으로 다니며 교화사업을 한다.
2) 부처님 몸에 갖춘 32표상(標相). 32대인상(大人相)·32대장부상(大丈夫相)이라고도 함. 이 상(相)을 갖춘 이는 세속에 있으면 전륜왕(轉輪王)이 되고, 출가하면 부처가 된다고 함.
3) 80수형호(隨形好)라고도 함. 부처님 몸에 갖추어진 여든 가지 출중한 모양을 말함. 이는 32상을 다시 세밀하게 나눈 것으로 경·논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4) 4성제(聖諦)라고도 하며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불교 불변의 진리를 나타낸 것. 고제(苦諦)는 현실을 바로 고(苦)라고 관하는 것이고, 집제(集諦)는 고(苦)의 이유 근거 혹은 원인을 말하며,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業)을 말함. 멸제(滅諦)는 깨달을 목표 즉 이상(理想)의 열반을 말하고, 도제(道諦)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 즉 실천하는 수단을 말함. 4제 중 앞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因果)이고, 뒤의 2제는 깨달음[悟]의 인과를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