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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 값진 ‘겨울의 유산’ [불교도서] 2009-02-05 / 4270  

 
공안(公案)의 정수로 푼 성장·구도소설 수작

아버지 임종게 화두 삼아 소년기 헤쳐나가

더운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선불교 가르침

이국 거리서 부친이 건넨 말 ‘너는 살아라’



일부 독자들에게만 말로만 전해지던 다치하라 마사키의 《겨울의 유산(한걸음 더)》이 동국대출판부의 노력으로 한국 땅에 빛을 보게 됐다.

《겨울의 유산》은 동국대 인도철학과 김호성 교수가 수차례 지면을 통해 ‘에밀레 종소리 같은 깊은 여음이 울리는' 작품이라고 극찬한 바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불교계에서는 관심이 고조됐으나, 《구름꽃》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절판돼 구할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제목에서 어느 부분 암시하고 있듯 《겨울의 유산》은 성장소설이자, 구도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겨울’이 의미하는 것은 ‘무상(無常)’이다. 따라서 소설 속 화자는 무상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무상함을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선뜻 들으면 이해가 안가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그 뜻을 알게 된다.

간단히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겨울의 유산》은 ‘행복감과 무상감 사이(유년시대)’, ‘무량사 토담길(소년시대)’, ‘건각사 산문 앞’ 세 편으로 구성돼 있다.

‘행복감과 무상감 사이’는 여섯 살 되던 해 주인공인 ‘내’가 아버지의 당부로 아버지가 강사로 있는 무량사의 선방에 취학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는 구한말의 귀족출신으로 교토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화자가 선방에 들어간 해 겨울, 아버지가 자결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화자는 한없는 무상감을 경험하게 된다.

‘무량사 토담길’은 화자가 안동 심상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한다. 화자는 어머니가 재혼하는 와중에 경북 구미의 외숙부에게로, 다시 재혼해 간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가게 된다. 유년시절과 소년시절 화자에게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는 무량사의 무용 송계스님과 허백당 청안스님이다.

임제선풍을 오롯이 잇고 있는 이들 선사로부터 화자는 일체 막힘이 없는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선법(禪法)의 진미를 맛본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어둔 그림자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대장부의 길을 인도해주기도 한다.

‘건각사 산문 앞’은 소년시대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이다. 그 사이에 화자는 대학에 입학하였고, 한 살 연하의 요네모토 미쓰요와 결혼했다. 아내가 산월이 가까워지자 화자는 학업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매진한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건각사에서 선 수행을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도식화해서 보면 이 소설은 아버지/ 어머니, 선불교/ 일본불교, 비루한 것/ 도저한 것으로 이분화해서 해석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세계는 유원(幽園)하고도 담박(淡泊)한 영역이다. 화자는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강원으로 강의하러 가던 아버지의 지친 듯한 뒷모습이 남아 있었다. 어느 해 봄, 스페인의 두메마을을 걷고 있을 때, 그리고 어느 해 겨울, 그리스의 두메마을을 걷고 있었을 때, 그리고 어느 해 겨울, 일본의 야꾸시사로부터 도쇼다이사로 통하는 얼어붙은 길을 걷고 있을 때 여러 번 아버지의 이 뒷모습을 눈앞에서 본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뒷모습이 한 이름 없는 선승과 그 자식을 이어주는 유일한 인연의 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어린 나에게 준비되지 않은 채 보여진 이 뒷모습에는 임제의 가풍과 함께 나를 오늘까지 살아남게 해준 요소가 들어 있었다.”

화자에게 아버지는 세월이 지날수록 심연에서 더운 그림자가 휘번하게 빛을 발하지만, 어머니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어머니에 대한 화자의 회고는 아버지와 너무나 대조된다.

“내 마음 속에서 어머니는 그림자가 희미했으며 비린내가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귀찮은 여인이었다. 보지 못하던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어머니는 자식인 나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어머니는 아니었다.”

화자의 심적인 정황이 이렇다 보니, 화자에게는 아버지의 세계로 귀속되는 선승들과 무량사 토담길, 이조백자가 모두 가없이 아름다운 가치로 여겨진다.

이 소설이 성장소설과 구도소설의 역할을 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화소(畵素)는 공안(公案)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버지의 임종게와 고승들이 연꽃을 보고서 읊은 문장과 한서도래여하회피(寒暑到來如何回避)를 들 수 있다.

먼저 연꽃에 대한 공안을 살펴보자.

청안스님이 화자에게 연못을 가리키며 묻는다.
“연못이 보이느냐.”
“보입니다.”

청안은 붓을 들어 종이에 옛 선사들의 일화를 적는다. 그 일화들은 연꽃이 아직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와 물에서 나온 후를 묻고 답하는 선문답에 대한 것들이다.

이에 대해 삼조종 선사는 처음에는 “절기가 아직 아니 되었다”고, 나중에는 “지난해와 같도다”라고 답한다. 호국선사는 먼저 질문에 “더듬어 찾는 일에 맡겨”라고, 나중 질문에 “눈이 있으면서 장님과 같다”고 답한다. 염현성 선사는 “다투어 머리 끝이 생긴다”고 한 후 “모든 게 치욕스럽다”고 답한다. 그런가 하면 “아직 겨울이 지나지 않아 춥지 않다는 것이겠지”라고 응수한 뒤 이어 “아직 여름이 지나지 않아 덥지 않다는 것이겠지”라고 확답한 도장변 선사에게만 “나왔을 때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한가”라는 별도의 질문이 주어진다.

이 질문은 청안스님이 화자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이 화두를 화자는 스스로 푼다. 그 답은 “안화(眼花)를 일으키지 말라. 연꽃 스스로에게 맡겨라”다.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연꽃은 스스로 자재하다는 것을 깨달은 어린 화자는 큰 스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화두를 풀어서일까? 화자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연꽃과 같이 ‘한서도래여하회피(寒暑到來如何回避)’의 길을 가게 된다.

무량사를 떠나는 화자에게 청안스님은 묻는다.

“너, 한서도래를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
“나, 춥고 더움이 없는 곳을 향해 떠납니다.”
“어떠한 곳이 춥고 더움이 없는 곳인가?”
“추울 때는 나를 추위로 죽입니다.”
“더위는 어떻게 해?”
“나를 더위로 죽입니다.”

청안스님과 화자의 문답은 동산개 선사의 선문답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않던 아버지를 여의고, 잇따라 홀연히 어머니가 재가해 떠남으로써 절대고독을 경험하는 소년의 화자에게 이 공안들은 공안이 지닌 메타포처럼 의연한 삶의 길을 제시한다.

화자의 정신의 키가 한층 발돋움을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십여 년이 훌쩍 흐른 뒤의 이야기인 ‘건각사 산문 앞’이 전개돼도 독자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미 화자는 무량사를 빠져나온 순간, 소년에서 성인(成人)으로, 미욱한 이에서 각자(覺者)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성장소설이자 구도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면밀히 따져보면, 이 소설의 완성은 화자가 아버지의 임종게를 풀음으로써 마침표를 찍는다.

30년 동안 꿈의 집에서 놀았으니
어려서부터 문무(文武)를 배운 것 공화(空花)와 같구나
속절없는 이 육신 편안치 않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그림자여라
나, 오늘 아침 이 육신을 벗고 공무(空無)로 돌아가니
옛 부처의 집 앞에는 달이 밝구나
다만 원적(圓寂)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할 뿐이로다

아버지의 입적게에서 ‘꿈의 집’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연상시키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과 그림자여라’라는 대목은 《금강경》의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를 떠올리게 한다.

선불교의 정수를 꿰고 있는 아버지의 입적게는 화자가 성인이 되도록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붙는다. 화자가 이 화두와도 같은 입적게를 푸는 것은 공교롭게도 자신을 닮은(따라서 아버지를 닮기도 한) 아들을 낳은 후이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화자는 이 화두를 푼 것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내를 나와 토담길을 걸어 야꾸시사(藥師寺)로 향했다. 그리고 야꾸시사에 가까운 네거리까지 걸었을 때 앞쪽을 누군가가 스치고 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는 달리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다. 원래가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이 드문 길이었다. 나는 멈춰 섰다. 이때 나는, 내 눈앞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한낮의 햇빛 속을 아버지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예기치 않았던 만남이었다. 곧 아버지의 뒷모습은 햇빛 속으로 스러져 갔다. ‘한거 원준 스님’하고 나는 중얼거려 보았다. ‘당신은 교토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이 나라에 오신 일이 있으셨던가요. 당신이 지난날 걷던 길을 지금 아들이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일까요….’ 대답은 없고 빛 속으로 빨려들어 간 뒷모습이 너는 살아라,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몇 년 후의 겨울에도 나는 이 네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그때는 야꾸시사에서 도쇼다이사로 가는 도중이었다.”

그래서 화자는 감히 <증도가>의 한 구절인 ‘하늘에 빛나는 달은 어느 강에나 그 모습을 비치고 어느 강에나 비치는 달은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에 담긴다’는 말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불교투데이 1월 29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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