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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좋은 글
   개울가에 얼음이 얼기 시작 한다 [산방한담] 2008-11-27 / 2790  

 
法 頂(스님)

11월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 평원에 들짐승들의 자취가 뜸해지고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내린다. 그렇지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동안 비웠다가 때가 되면 다시 채워질 것들이다.

11월이 내 둘레에서는 개울가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달이다. 첫서리가 내린 아침 적갈색 다기를 내놓았는데, 며칠을 두고 써보아도 정이 가지 않는다. 쓰임새도 좋고 모양도 그만한데 웬일인지 그릇에 마음이 붙지 않는다.

이 일을 두고 생각하니 인간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오랜 세월 오며가며 지내도 정이 가지 않고 떨떠름한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래 사귀지 않았는데도 서로 마음의 길이 이어져 믿고 따르는 사이도 있다. 한 때는 맹목적인 열기에 들떠 결점도 장점으로 착각하기 일쑤지만 그 열기가 가시고 나면 밝은 눈으로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월이 눈을 뜨게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보다 나무와 꽃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산에서 살면 동물보다 식물을 더 가까이 대할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서 그 속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정직하고 진실한 덕과 시원한 그늘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무와 꽃들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그 시기를 잘 안다. 결코 어기는 일이 없다.

오두막 뜰 가에 소나무가 네 그루 정정하게 자라고 있는데, 그 중 한 나무에 전에 없이 솔방울이 많이 매달렸다. 웬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몇 해 전 폭설로 한 쪽 가지가 꺾여 나간 바람에 맞은 쪽 가지의 무게 때문에 나무가 한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나무는 위기를 느끼고 자신의 뒤를 잇도록 씨앗이 담긴 솔방울을 많이많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탐욕스런 사람들보다는 나무쪽이 훨씬 지혜롭다. 이 산중에서 함께 사는 인연으로 단단한 물푸레나무로 받침대를 해주었다. 내가 곁에서 거들 테니 걱정 말고 잘 지내라고 일러주었다. 그 소나무는 가지에 보름달을 올려 한밤중에 나를 불러내었다. 이래서 산에서 사는 나는 사람보다도 나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고대 인도의 위대한 왕, 아쇼카는 모든 국민들이 최소한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보아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치유력이 있는 약나무와 열매를 맺는 유실수와 연료로 쓸 나무, 집을 짓는데 쓰일 나무, 꽃을 피우는 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했다. 아쇼카왕은 그것을 ‘다섯 그루의 작은 숲’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까지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보았는가. 우리나라 기후로는 입동 무렵이 나무를 옮겨심기에 가장 적합한 때다. 그리고 나무들이 겨울잠에 들기 시작하는 이 때가 거름을 주기에도 알맞은 때다. 나무를 심고 보살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출처 : 맑고 향기롭게>
[위 글은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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