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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좋은 글
   또 한 해가 빠져 나간다. [산방한담] 2008-12-01 / 2802  

 
法 頂(스님)

인도에서 불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생긴 자이나교는 불살생계를 엄격하게 지키는 종교다. 그들은 도덕적인 고행생활을 강조한다.
그들에게는 1년에 한 번 ‘용서의 날’이 있다. 그날 자이나교도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땅과 공기, 물과 불, 동물과 사람 등 모든 존재에게 해를 끼친 행동을 낱낱이 기억해 내면서 하루 동안 단식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허물을 하나하나 상기하면서 용서를 구한다. 자신이 해를 끼쳤거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맞섰던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나는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원한은 갖고 있지 않으며 내 마음 속에 미움이나 불만을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내게는 어떤 적도 없습니다. 똑같은 영혼을 지닌 당신도 나를 용서하기 바랍니다.’
멀리 떨어져 찾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편지를 쓴다. 그런 다음에야 단식을 중단한다.
이와 비슷한 의식은 일찍이 불교교단에서도 행해졌다. 자자(自恣)가 그것이다. 안거가 끝나는 날, 대중이 선출한 자자를 받는 사람 앞에 나아가 안거 중에 자신이 범한 잘 못이 있었다면 기탄없이 지적해달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세 번 거듭하여 만약 잘 못이 있어 지적당하면 그 자리에서 참회한다.
이와 같은 ‘용서의 날’이나 ‘참회’는 묵은 허물을 훨훨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에서 생긴 신앙적인 의식이다. 자신이 범한 업의 찌꺼기를 말끔히 청산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다.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본다. 내게서 또 한 해가 빠져 나간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잘 산 한 해였는지 잘 못 산 한 해였는지를 헤아린다.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서운하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하고 싶다. 맞은편과 내 자신에게 다같이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놀림이 불편한 한 노스님이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자 몹시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고 싶어 옆방에서 자는 시자를 불렀지만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다.
잠시 뒤에 누군가가 시자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노스님께서 물을 찾으시오’라고 말했다.
깊은 잠에 빠졌던 시자가 벌떡 일어나 물사발을 받쳐 들고 노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노스님은 놀라면서 물었다.
“누가 너에게 물을 떠오라 하더냐?”
시자는 대답했다.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면서 노스님께서 물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노스님은 탄식했다.
“이 늙은이가 수행하는 법을 잘 모르고 있었구나. 만일 참으로 수행할 줄 알았다면 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오늘 밤 나는 도량신(토지신)에게 내 생각을 들키고 말았다.”
청정한 도량에는 도량신이 그곳에 사는 수행자를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 《천수경》에서도 도량이 청정하면 불법승 삼보와 옹호신장들이 그 곳에 깃든다고 했다.
수행자뿐 아니라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은 기거동작이 밝고 활달하고 분명해야 한다. 어둡고 음울하고 불분명함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라 만나는 이웃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 해가 기우는 길목에서 다같이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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