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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좋은 글
   겨울 나무에서 침묵을 [산방한담] 2008-12-17 / 2795  

 
겨울철 나무들은 그대로가 침묵의 원형이다. 떨쳐버릴 것들을 죄다 훌훌 떨쳐버리고 알몸으로 의연히 서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침묵의 실체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저 산마루에 빽빽이 서있는 나목들은 겨울 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허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무들의 자태가 더욱 정답게 다가선다. 산마루의 나목림 사이로 달이 떠오를 때, 나무와 달은 둘이면서 하나를 이룬 겨울 산의 신비롭고 황홀한 아름다움이다.

겨울 숲을 대하고 있으면 우리 안에서도 침묵이 차오른다. 침묵의 의미를 거듭 챙기게 된다. 평소에 무심히 쏟아버린 말의 가벼움과 침묵의 무게에 따른 그 상관관계를 헤아린다.

추위를 피해 겨울 산을 떠났다가도 침묵의 숲이 그리워 다시 찾아드는 것은 물을 벗어난 어류들이 다시 물을 찾아든 그런 격이다.

요즘 우리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지긋이 참고 기다릴 줄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말할 때 긍정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생각해낸 말을 덧붙이려는 공명심에서 상대편의 말을 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일은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이 늘 반성하는 바이다.

될 수 있는 한 상대편으로부터 질문을 받기 전에는 말을 삼가려고 하지만 이 일도 생각대로 잘 안 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번번이 그 덫에 걸린다.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 설교조로 남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따금 그런 실수를 범한다. 사람을 만날 때는 무엇보다도 명랑한 친절이 따라야 한다.

덕이란 단순히 선행의 수준을 넘어 최선을 다하려는 어떤 성향이다. 덕은 결국 우리 행동을 조절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고 의지할만한 힘, 즉 그 능력이다. 늘 생각한 바이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덕행’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옛말에도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한 것이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너무 세속적인 정서에 젖어 있다. 곧잘 시시껄렁한 일에 빠져 들고, 소비지향적인 사고에 물들어 영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침묵을 익힐 줄을 모른다.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 우레와 같은 침묵을 거치면서 진리가 드러났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날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한테 이웃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여보게, 소크라테스! 자네에게 꼭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뛰어 왔네. 자네 친구 놈이 말이야….”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에게 자기가 하려는 말을 세 가지 체로 걸렀는지 물어 보았다. 즉 진실의 체, 친절의 체, 필연성의 체로 걸렸는지를.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일 자네가 내게 하려는 말이 진실한 말도 아니고, 친절한 말도 아니고, 꼭 필요한 말도 아니라면 그 말은 그저 땅에 묻어 버리게. 그래야 자네나 나나 그것 때문에 공연히 속 썩일 일이 없을 거네.”

겨울 나무를 보고 침묵을 익히고 그 의미를 배우자.

글 ; 法 頂(스님)



<출처 : 맑고 향기롭게>
[위 글은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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