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일선 일찌기 의문을 품고 조계산 송광사에서 법흥 화상을 은사로 득도 . 중앙승가대학 졸업. 봉암사를 비롯 제방선원에서 정진. 송광사에서 10여 년간 수련회를 이끌었으며 거금도에서 안거 정진 중. 금천선원 선원장.
영원한 귀향을 꿈꾸는 사람들은 두 귀를 하나로 하여 눈으로 파도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인생을 고해라고 하지만 밑 없는 배를 타면 삼매의 바다에서 빈 배같이 물결을 따라서 노닐 수 있습니다.
저기 파도소리가 들리십니까? 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타고 곧장 들어가십시오. - 작가 서문 중에서
▶제1부 화엄의 세상 거금도는 화두라는 말 속에는 말이 없는데 여기에 알음알이를 내고 무슨 뜻을 찾게 되면 사구가 되어 머리만 어지럽고 수행과는 멀어져 버린다. 그렇지만 일체의 사량과 분별을 떠난 살아있는 활구는 마음의 길마저 끊어버려 생사의 고통과 일체 업력을 녹여버리고 궁극에는 본래 청정한 마음을 드러내서 해탈을 이루게 한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화두 하는 맛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그 무겁고 칙칙한 욕망이 끊어지고 대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알아차려 돌이켜 화두를 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가 출현을 한다. 그래서 화두 법을 깨달음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설사 화두를 하는 사람이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다음 생은 분명하게 보장이 된다고 했다. 화두가 잘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곧 부처이며 사람이 바로 부처라는 확고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일체 공덕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였다.[본문 중에서]
▶제2부 소통의 바다 마음이 부처라고 분명하게 믿고 깨달으면 사람마다 부처이니 조금 생각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고 다툴 것이 무엇이며 수행방편이 서로 다르다고 우열을 내세울 것도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정각을 성취하고 나서 깨달은 바를 설할 것인지 몇 번이나 망설였다. 아무도 이해할 사람도 없고 설한다고 해도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여 그대로 열반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범천의 거듭된 간청으로 다시 마음을 돌이켜 처음 『화엄경』을 설했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그대로 부처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지가지 방편으로 설법하여 결국에는 깨달음으로 인도하였다. 어쩌면 팔만대장경은 부처님과 중생들의 소통의 기록이라고 해도 될 것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침판이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제3부 파도소리를 타고 들어가라 옛 부터 파도소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소리의 모음으로써 불보살님의 음성과 가장 가깝다고 하며 듣는 사람은 편안하여 마치 자비로운 어머니의 음성으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비로운 품에 안긴 아이가 포근함으로 울음을 그치고 잠에 들듯이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능엄경에서 설하는 이근원통은 소리를 바로 들을 줄 아는 귓속의 귀는 여섯 가지 근을 서로 포섭하여 상호 호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귀로써 보며 눈으로 듣는다는 말이다. 사실은 파도소리가 귀로 다가서거나 귀가 파도소리를 향하여 가지는 않지만 성품은 한결같이 공하고 고요하여 자성의 바다를 이루기 때문이다. 백 천 강물은 바다에서 만나 다툼이 사라지고 짠맛으로 일미를 이루니 그 작용으로 깊은 밤에도 쉬지 않고 파도소리로 굽이치고 있다.[본문 중에서]
▶제4부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외롭지 않으면 공부를 성취할 수가 없다. 섬에 살면서 좋은 것은 쓸데없는 사람 만나지 않고 배시간이 끊어지면 올 사람도 못 오기 때문에 정진하기는 참 좋다. 섬 속에 또 하나의 섬으로 살면서 흐름을 돌이키며 성태를 기르는 것은 궁극에는 모든 이웃들에게 안전한 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다. 외로움은 성품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이기에 수행자는 외로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본문 중에서]
파도소리가 귀로 다가서거나 귀가 파도소리를 향하여 가지는 않지만 성품은 한결같이 공하고 고요하여 자성의 바다를 이루는 것이다. 일선 스님이 이끄는 아름답고 경쾌한 '소리'를 따라 깨달음의 바다로 함께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