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불교방송 ‘아침풍경’의 새 진행자이자 대한불교조계종 교수아사리(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스님) 중 유일한 소장파 비구니인 원영 스님이 들려주는 계율 이야기
허물이 있으니 계율이 생겼다
수범수제(隨犯隨制). 불교의 계율이 제정된 이유를 한마디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불교의 계율은 기독교의 ‘십계’나 이슬람의 ‘율법’처럼 신의 계시에 의해 한날한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제정한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즉 출가자의 비행이 있을 때마다(隨犯) 부처님이 그것을 규제하여 금지조항을 만든 것(隨制)이다.
사실 교단이 생기고 한동안은 이런 계율 제정의 필요성조차 없었다. 오직 깨달음을 위해 한길을 가는 수행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佛法)이 급속히 퍼져나가자 이 공동체 안으로 ‘수행’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 즉, 불순한 의도를 가진 외도, 군역이나 굶주림을 피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교단이 흔들렸다. 여기에 수행에서 도태되었던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도둑질(단니가 비구)이나 음행(수디나 비구) 심지어 살인(바구강변 비구)까지 벌이는 일도 일어났다. 당연히 신도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었고 때로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부처님은 수행자의 수행 편의와 신도들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때그때마다 계율을 제정하게 된다.
이런 계율을 모아 놓은 책이 바로 율장(律藏)이다. 그런데 딱딱할 것만 같은 이런 율장에는 이런 계율이 만들어지게 된 연유가 하나하나 적시되어 있어 읽다보면 부처님과 수행자들은 당시에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수행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어떤 벌을 받았으며, 다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등등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늘의 거울, 2600년 전
이 책은 2600년 전 인도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수행할 때의 생활모습과, 많은 수행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발생하는 일들로 인해 ‘율(律)’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렇게 제정된 율이 각각의 사건에 적용되는 것을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로 활용하여 현재 한국불교 내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현상들을 살펴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계율이 제정된 동기와 함께 우리는 이를 현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곰곰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율장을 통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승가라고 하는 출가수행공동체의 생활상’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율장이라고 하는 불교의 역사적 기록물을 읽으면서 ‘승가’라고 하는 조직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존속시켜 나갈 것인지 가늠해 가며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밝히다
책은 모두 3장으로 나누어졌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현대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수행하면서 직접 겪은 경험담을 말머리로 열면서 2600년 전 당시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핀다.
버리다 편에서는 불교의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출가, 안거와 수행, 해제, 소임, 법랍과 토론, 여성 출가자, 장애인 출가, 파승 등과 관련하여 당시 승가공동체의 상황과 생활과 규범들을 알 수 있다.
‘출가’와 관련해서 저자는, 부처님은 진리를 추구하여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일깨움으로써 그들을 출가의 길로 이끄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 유일신이나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고 그렇다고 절대자의 존재를 믿을 정도로 순박하지도 않은 젊은이들에게 불교의 출가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합리적인 안목을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얻다 편에서는 유ㆍ무형의 불교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찰, 도량 불사, 음성공양과 산사음악회, 객승과 객실문화, 삼배와 인사문화, 걸망과 자동차, 스님과 산행, 정법(淨法), 정인(淨人)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율장을 보면 부처님 당시에도 자신이 머물 공간에 집착을 보이는 상황이 나타나고 의복에 욕심을 내는 비구가 있어, 개인 수행처의 크기를 제한했으며 옷도 세 벌만을 갖추라고 하였다 한다. 옷을 세 벌만 갖추라는 삼의(三衣)의 규정이 생기게 된 배경이 재미나다.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딱딱한 계율 가운데 일종의 편법으로 활용되어 숨통을 틔어 준 ‘정법(淨法)’ 제도가 존재했음을 읽으면서는 예나 지금이나 어디든 ‘구멍’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버리다 편에서는 마나타와 왕따, 술과 중독, 육식과 살생, 나무 심기, 보시에 대한 생각, 불교와 정치인, 화상, 자자(自恣)와 쓴소리 등 불교가 이 시대에 어떻게 가치 있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왕따에 관해서는 ‘우선은 즐겁고 유쾌한 말 한마디를!’, 음식쓰레기와 관련해서는 ‘세상은 적당량을 덜어 남김없이 먹는 음식문화가 대세’임을 강조하고, 나무 심기와 관련해서는 ‘미래의 봄은 더 이상 당연하게 주어지는 봄이 아니’라고, 쓴소리와 관련해서는 ‘현명한 사람은 바른말 쓴소리의 가치를 알기 마련’이라고 일갈한다.
‘나’에게 활용하는 계율
부처님은 “길은 이미 일러 주었으니 그것에 의지해 스스로 나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불교를 스스로 수행하는 종교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기 개선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강조되며 계율의 실천 또한 권유되었다.
저자는 ‘계’는 좋은 습관 길들이기, 선한 행위 행하기를 말하며 결과보다는 자발적 의도나 동기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의 불안정한 삶을 바꾸고 싶다면 나쁜 습성은 버리고 좋은 습관을 기르도록 애써야 한다. 꼭 이것만은 실천하리라 노력하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은 바뀌기 마련이다. 2600년 전의 율장을 지금에 와서 꺼내어 읽는 이유가 될 것이다.
지은이 소개
원영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교수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2000년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하나노조대학(花園大學) 대학원에서 2005년 《범망경의 자서수계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 학위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와 《계율과 불교윤리》(공저), 《대승계의 세계》가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펴고 있다.
담앤북스 / 224쪽 / 1만 38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