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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파 긍선 스님의 육조단경 이해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조선 후기 백파 긍선(白坡 亘璇, 1767∼1852) 스님은 56세 때인 1822년 《수선결사문》을 지어 전통적인 선수행법을 거양하였고, 이태 뒤인 1824년에는 《선문오종강요사기》를 지어 대기와 대용을 드러내었다. 1826년에는 《선문수경》을 저술하여 임제의 조사선풍을 진작하였고, 1845년 만년에는 《단경》에 대하여 주석서를 내놓았는데, 그것이 본 《육조대사법보단경요해》이다.

《단경요해》는 덕이본 《단경》을 바탕으로 주석한 것이다. 《단경》에 대하여 백파 나름 진공과 묘유의 도리를 적용하여 《단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본 《단경요해》의 가치를 찾아볼 수가 있다. 때문에 《단경요해》는 그동안 다양한 저술과 주석을 통하여 조사선의 전통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하였던 백파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백파 스님의 이런 면모는 스님이 지은 이 책의 서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 동방의 제산(諸山) 총림에서는 ‘대선장과 노선장들이라고 명성이 알려져 있는 사람들도 지혜의 안목이 없다’고들 말한다. 또한 ‘눈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까닭에 전승된 조사의 가업을 포기해버리고 만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납자들은 망연히 어떤 수행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젊어서 시작하여 노년기에 이르고 만다.

그리고 무릇 인천인과교(人天因果敎) 가운데만 머물러 있으면서 상(相)에 집착하는데, 그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 행위로서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이 일용의 다반사이다. 때문에 우리 불조의 정법안장이 한번 땅에 떨어져 먼지 속에 묻혀버린 지가 오래이다. 그래서 법의 당기를 세울 만한 장소가 없고, 조사의 등불을 붙일 만한 시절인연이 없어져 언념(言念)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로써 내가 범우(凡愚)를 따져보지도 않고 무모하게도 보배 칼을 휘둘러서 경전 가운데서 견성성불로 세간에 전승되는 정맥을 발명해보니, 제방의 대 선실들은 거의 죽고 늙은 두타의 활명(活命)만 남은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우리의 도반들은 지금 이후로 특별한 마음을 열고 대장부의 마음을 내어서 선·악과 인·과를 모두 따지지 말고 직접 이 《법보단경》의 정법안장을 가지고 영원히 선실 가운데 일용의 명경으로 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마침내 해가 뜨면 햇살이 비취고 또 햇살이 사라지는 바로 그 도리야말로 본분납자의 방편이 없는 가운데 진실한 방편이고 수증이 없는 가운데 진실한 수증으로서 시절이 도래하면 그 도리가 저절로 현창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당당한 불제자로서 도로 마구니의 권속에 들어가는 것을 내버려두고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개가 코끼리의 가죽을 뒤집어쓴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삼다발을 버리고 금덩이를 짊어지는 지혜 또한 반드시 모든 산야에서 살아가는 불자들의 직분이 되어야 하지 아니겠는가.”

옮긴이 김호귀 교수는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로 지내고 있다. 저서로는 《금강삼매경론》, 《금강선론》, 《묵조선 연구》, 《선문답의 세계》 등 다수가 있다.

정우서적 / 301쪽 / B6 / 1만 5000원

2012-09-13 / 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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