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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명전환의 시대, 신화에서 새 길을 찾다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왜, 21세기에 신화인가?

21세기는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많은 지성들이 이야기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듭되는 경제 위기로 더 물질 중심이 되고 생존 경쟁에 떠밀려 민심은 더 각박해져가고 개개인의 영혼은 고갈되어 간다. 그래서 옛 이야기 같은 신화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그리스ㆍ로마의 폭력적 영웅 신화만이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세상에 판타지로서 위안을 주는 것 같다. 현실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현실 뒤에서 이미 세계경제로부터 밀레니엄적인 전환이 서서히 그리고 급격히 이뤄질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전환에 대해 근대의 여러 선각자들이 문명이 원시반본하여 근원을 찾아 돌아간다고 이야기하였지만, 문명이 파괴되어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류가 자연과 생명의 근원을 찾아 공생하는 새 문명, 새 영성 문화를 갈구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문명전환 시대의 재신화화(Re­mythology)를 주창하고 신석기 시대, 모계 시대의 지모(어머니 대지)신화, 대지의 신화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신화는 단지 옛이야기가 아니다. 내안에서 거듭나기를 바라며 작동하는 싱그러운 힘이라고 말한다.

현대는 근원을 등진 집단망각증의 시대

현대인의 영혼은 목이 마르다. 영혼은 관성적으로 자신의 근원을 지향한다. 사람들은 문득문득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그러나 그 성찰은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현실에 매몰된다. 영혼의 근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화는 우리말로 ‘본풀이’이다. 생명의 고향(근원)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의 삶이란 집단적인 기억상실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근원, 이 우주의 근원을 모른 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이 집단 망각증은 사회체제의 이데올로기가 강제해온 것이요, 일상이 물질주의 생존양식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가 김봉준의 신화 찾기­ 신화와 예술의 통섭

그래서 신화, 신화의 해석, 재해석은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일이다. 이 일을 신화학자가 아닌 화가 김봉준이 시도한 것은 10여 년간 도시를 떠나 자발적 고립의 길을 천착한 데서 이유가 있다. 김봉준은 80년대 민족민중문화운동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김봉준 하면 떠오르는 것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각종 시위의 최전선을 지켰던 대형 그림막, 즉 걸개그림을 창시하고, 최초 민중만화‘농사꾼타령’으로 민중만화운동을 일으키고, 민주화운동, 노동, 농민 운동의 현장에서 우리 전통 목판화를 재창조하여 신명난 채색목판화 운동을 펼친다. 또한 우리 전통 붓을 되살려내 ‘한글붓그림’ 시서화 운동, 옹기항아리 흙판말이 기법과 조형기술을 결합한 직조형 흙조각의 창작 등, 그는 우리 문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우리문화 정체성 살리는 일을 줄기차게 해왔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그의 치열한 사고의 산물로서 80년대 주창한 ‘신명론’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예술 사상은 세계여행과 암의 병고를 넘기면서 거듭 발전하여 10여 년 전부터 신화에 착근한다. 신화는 그의 사고와 예술창작의 원천지 같은 것이다. 그는 신화와 예술이 먼저 적극적으로 통섭해야 미래의 대안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신화에서 새문명의 길을 찾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신화를 다룬 책입니다. 그러나 신화학神話學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나와 모든 이들의 삶 속에서 희망의 빛을 다시 찾고 싶어 떠난 한 예술가의 신화순례길 보고서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모두가 신성한 힘을 가지고 우주의 중심으로서 거듭나는 방법은 바로 신화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팍팍해질수록 신화가 예시하는 길이 절실합니다.…… 현대문명의 이 모든 것들은 인류문화의 다원성과 자기 주체성과 개체의 신성을 뿌리째 흔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개념주의가 지배하는 로고스 세상에서 의지할 곳 없는, 보잘 것 없는 한 영혼은 신화에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인류 최고의 이야기로 지금의 삶을 본풀이 하고 싶었습니다. 신화로 삶의 길을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신화는 나의 영혼, 너의 영혼, 미물과 우주 만물의 영혼까지도 인정하는 인류 사유의 가장 큰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신성하게 들릴 때까지 신화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손, 발, 몸이 알 수 있는 느낌을 찾아서 신화로 말하고 싶었습니다.”(저자 서문 중에서)

동북아 천손족 문화의 원형을 찾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나뉜다. 제1장,‘신화의 길목에서’는 도입부로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의 신화에 대한 기본관점을 이야기 한다. 국가주의에 갇힌 환웅과 웅녀신화, 그리스 신화는 폭력영웅들의 신화, 대지를 품고 있는 여신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제2장,‘대자연과 신화 순례’는 여러 신화지대를 순례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쓴 순례기이다. 호호캄, 호피족 등 북미 인디언 주거지를 찾아서 그들의 신화와 의례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우리 문화와의 연관성도 알아낸다. 이들은 신화학적 식견을 가지고 현장 취재로서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들이다. 특히 키바에 얽힌 신화의례와 상징의 의미를 인디안 축제 현장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흑수말갈족 오지마을과 연해주에서 바이칼까지 여행을 통해 취재한 동북 아시아의 신화를 통해 우리 문화와의 연관성, 특히 우리가 그동안 정확한 의미를 몰랐던 신화적 의례의 의미로 고수래, 샤만의 온고드, 아리랑 등의 의미를 확인한다. 또한 몽골 유목민 취재를 통해서 동북아 천손족문화의 원형을 찾는다. 이로서 대륙의 영혼문화가 우리문화와 긴밀함을 설득력 있게 밝혀낸다. 동북아시대 유라시아 평화의 길 찾기에 꼭 필요한 문화적 이해를 확장시킨다.

사상의 거처 원주에‘오랜 미래 신화미술관’을 세우고 신화예술 운동을 펼치다

‘잃어버린 우리 신화를 찾아서’에서는 자청비, 선문대 할망, 환웅과 웅녀, 삼신할머니, 유화, 마고, 도깨비 등 잃어버린 우리의 신화들의 의미를 찾고 대보름맞이 등 의례놀이에 깃든 우리 문화의 정신을 찾는다. 마지막 ‘신화의 부활’장에선 신화와 예술과 의례와 교육과 과학기술의 신화적 통섭을 모색해본다. 저자에게 신화는 박제된 것이 아닌 지금 마을에서 굿과 의례와 함께 전통으로 내려오는 현재의 것이며 미래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는 이를 ‘오랜 미래의 신화’라고 부른다. 저자는 현재 원주 취병리 진밭 마을에 국내 최초로 신화미술관을 세우고 신화미술 교육을 하고 있으며, 신화를 코드로 의례, 예술, 농업, 생태기술, 생활문화를 통섭하는 신화마을을 제안하는 사회적 사업과 ‘다문화공생 지역문화 만들기’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그가 《신화순례》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저 치열했던 ·80년대 민족민중문화운동을 성찰하고 위기의 시대, 문명전환기의 문화운동으로 신화와 예술을 융합시킨 신문예운동­ 재신화화를 제안하는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김봉준은 화가이며 조각가이다. ’70년대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였고 민속문화 연구회를 운영하며 탈춤, 풍물, 탈, 붓그림, 붓글씨 등을 전습하고 민속학, 인류학에 심취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19년 전 강원도 산골 화실 생활로 이주하여 살면서 미술작품활동을 하여 왔다. 때로는 세계의 신화지대를 순례하며 신화와 예술의 관계를 풀려고 노력 해왔다. 이 책은 한국, 동북아시아, 북아메리카, 서아시아, 지중해 등의 신화지대를 순례하면서 고대 인류문명에서 느낀 신화에 관한 글들을 써왔다. 그는 신화와 예술이 먼저 적극적으로 통섭해야 미래의 대안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운영하며 예술창작 생활을 한다. 오랜미래신화미술관에서는 그의 신화적 조각, 회화, 판화가 전시 중이다.
저서로 《붓으로 그린 산그리메 물소리》(강출판사), 《숲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동아일보사)가 있으며, 2009년 교보생명문화상 환경예술상, 강원민족예술인상을 수상했다.

미들하우스 / 416쪽 / A5 / 2만 원

출처 : 출판사 서평

2012-09-20 / 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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