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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연구’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다산 탄생 250주년 기념의 해에 선보이는 정찬주 신작 장편소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탄생 250주년 기념, 인간 정약용의 ‘사랑’을 그린 정찬주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이 <봄아필>에서 2012년 첫 출간되었다.

네스코 지정 올해의 기념 인물로 루소, 헤르만 헤세, 드비쉬와 함께 다산이 오르면서, “정약용은 매우 중요한 한국의 철학자로 그의 업적과 사상은 한국 사회와 농업, 정치 구조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라는 평을 얻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산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더불어 세계 각국의 다산학 연구자들까지 한자리에 모였으며, 그의 유배 생활과 문학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있다.

『다산의 사랑』 역시 정약용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하나의 ‘연구’다. 정약용의 주변 인물들, 홍임 모녀나 읍중제자와 초당제자, 홍씨 부인 등이 다산과 어떤 인간관계를 맺었는지 허구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이끌어 나간 것은 소설가만의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산의 사랑』은 소설적 상상 요소를 더욱 가미하여 인간 정약용의 삶을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바라본다.

다산초당과 제자들, 혜장 스님과 초의 선사….

18년간의 유배생활. 그 기간에는 다산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다. 유배지를 찾아오며 다산을 모신 초당의 제자들은 학문의 의지를 품고 다산에게 시를 지어 올리며 자신들의 출세를 꿈꾼다. 다산은 수많은 제자들에게 각자 다른 길을 안내한다. 제자들은 서로를 샘하기도 하고 속세를 떠나 승려들과 마음 편히 어울려 있는 삶에 대해 불만을 품기도 한다. 주막에 모여 다산을 둘러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은 인간 다산의 면모가 고스란히 나타나는 부분이다.

소식을 끊었던 제자들도 하나둘 슬그머니 나타났다. 더러는 집에서 과문(科文) 공부에 몰두하겠다고 핑계댔지만 사실은 흉년이 이삼 년째 들어 생활고를 풀기 위해 초당을 떠나 논밭뙈기를 일구던 제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약용이 혜장과 초의 같은 승려들과 체통 없이 사귄다고 못마땅해하면서 초당을 떠난 제자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등졌던 제자들이 날마다 초당으로 몰려와 낙엽이 쌓인 마당을 쓸고, 허물어진 축대를 손보는가 하면 우물에 낀 이끼를 걷어내는 등 부산을 떨었다. 제자들 모두가 스승 정약용이 서울에 가면 큰 벼슬을 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pp.18~19)

깊은 교우를 나눈 혜장 스님과 훗날 조선을 대표하는 위대한 선사로 성장하는 젊은 승려 초의. 그들은 다산의 외로움과 고독을 위무한다. 봄나들이를 떠나는 중 우연히 혜장을 만난 다산은 주막에 앉아 주고받은 몇 마디 말에서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느낀다. 혜장 역시 생전 혜장의 스승 말이 떠오르며 그가 정약용임을 혜장은 다산을 백련사로 데려와 차를 대접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 차, 속세, 유배, 스승 연담 등 둘의 이야기는 밤새 끝도 없는 공중전으로 이어진다.

이십 대 중반의 풋풋한 승려 초의는 혜장의 소개로 다산을 만난다. 초의의 첫인상은 “몸가짐이 진중했다. 말투가 느리고 행동이 굼뜨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다산이 가르친 제자들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제법 번득이는” 초의 승려의 시를 알아본 다산은 초의에게 시를 가르쳤고 학문에 대한 의욕이 식지 않기를 바랐다. 초의 역시 다산의 가르침을 얻은 제자가 된다.

정약용은 혜장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혜장은 스승 유일로부터 정약용의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으므로 언젠가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유일의 시 한 수가 벽에 붙은 방에 앉아 백련사와 강진의 풍광부터 마치 오래된 지기처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p.46)

“두 가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첫 번째가 아주 중요하지. 시란 뜻을 말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돼. 뜻이 본래 낮고 지저분하면 비록 억지로 청고(淸高)의 말을 빌려와 짓는다 해도 이치를 드러내지 못하는 법이지.”

“두 번째 마음가짐은 뭐신게라우?”

“시를 배우면서 뜻을 쌓지 않음은 똥 덩어리를 맑은 샘물로 거르는 것과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p. 148)

다산이 사랑한 여인, 남당네와 홍임

다산의 적적함을 채워준 여인이 있다. 제자 이청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며칠 머문 학림마을의 ‘남당네’였다. 남편이 죽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따라 술청 일을 돕던 그녀는 처음 아름다운 용모로 정약용의 눈에 들었다. ‘남당네’는 어린 나이로 예는 아직 몰랐으나 그 모습이 참하였고, 딱한 사정마저 다산의 마음을 흔들었다. 홀로 긴 유배생활에 마음이 적적하여 “아리따운 여인이 유혹하”는 꿈까지 꾸던 찰나에, 이청은 다산의 외로움을 눈치 채고 ‘남당네’에게 다산의 수발을 들게 하였다. 이후 다산은 ‘남당네’에게 마음을 열었다.

다산과 ‘남당네’ 사이에서 딸 ‘홍임’이 태어났다. 홍임이는 다산의 눈을 쏙 빼닮았다. 게다가 영특하기까지 하여 다산이 집으로 들어갈 때 데려가 공부를 꼭 시키기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부인 홍씨는 홍임이와 홍임 모를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다산은 이를 안쓰럽게 여겨 형님 집에 마련된 별채에서 둘을 머물게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영감마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요.”

“뭐냐, 말해 보거라.”

“홍임 모친이 사시는 오두막은 사람 살 데가 아닙니다요. 이엉은 썩어서 비가 새고 문짝은 달아나고 없습니다요. 거적때기로 겨우 바람을 막고 있습죠.”

“아직 가보지 못했구나. 내 불찰이야.”

정약용은 석이 얘기를 듣는 동안 입안에 침이 말랐다. 점심을 앞두고 입맛은커녕 소태를 씹은 듯 씁쓸했다. (pp.89~90)

남당네는 정약용에게 헌신적이었고 특히 차(茶)를 잘 끓였다. 혜장에게 배운 차 달이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차 종류에 따라 찻물의 온도와 따르는 양을 달리하여 “달빛이 드리운” 것 같은 차를 내놓았다. 게다가 차를 맛보는 재주까지 제법이어서 그동안 많은 승려들이 내린 차 솜씨를 흉내낼 뿐만 아니라 뛰어넘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외로운 마음에 차의 향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차는 단지 맛과 향으로 음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차는 정약용의 마음을 보살피고 있었다.

“초당의 차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홍임 어미의 차라고 할 수 있네. 나는 입으로만 이래라저래라 했지만 실제로는 홍임 어미 손으로 만들었지 않은가.”

정약용의 말은 사실이었다. 최근에 초당에서 만든 떡차는 모두 홍임 모의 손을 거친 것들이었다. 대둔사 승려 은봉이 정약용의 건강을 염려하여 잉어를 보냈을 때 답례로 나간 떡차도 홍임 모가 만든 차였다. 윤서유에게 보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p.202)

인간 정약용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

다산의 나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고 떠나갔다. 다산의 세월은 아름답기도 했으나 외로움이 늘 따라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인간 정약용의 ‘사랑’이 있다.

소설은 정약용이라는 인간과 주변 인물들의 굴곡진 삶을 선연하게 그리고 있다. 어떤 이는 필연적으로 다산을 찾아왔으며 다른 이들은 우연히 다산을 만났다. 또 다른 이들은 다산의 곁에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인물들의 사연은 서로 실타래처럼 얽혔다가 다시 풀어지기도 하였으며, 소설은 이를 통해 가슴에 고인 슬픔을 정처 없이 흘려보냈다. 그것이 바로 다산을 연구한 학문과는 다른 소설만의 강점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강진, 그 속에 녹아든 구수한 남도 사투리. 다산이 살았던 유배지들의 묘사를 바라보면 다산의 고독과 슬픔, 더 나아가 우리들의 고뇌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다산을 연구한 수많은 학문들과 차별화된 소설은 다산의 생을 가장 선연하게 나타낸 연구이자 논문이다. 이야기는 부드럽고 유려한 강줄기처럼 보인다. 정처 없이 살아왔던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외로움과 고독 속의 미련과 애착, 그리고 사랑의 담담하고도 애잔하게 느낄 수 있다.

홍임이는 출가를 선택했다. 제자들의 소식은 뜸해지고 얼굴조차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산은 터널 같았다. 다산을 지나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택했다. 정약용은 이런 삶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누구나 작은 미련은 있기 마련이나, 돌아오고 다시 돌아나가는 삶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산이 혜장을 만나 석양이 지도록 차를 마시고 달빛에 취해 읊조린 시에는 피고 지는 인간의 계절이 들어 있다.

초여름 꽃다운 많은 나무들이
기운차게 읍성을 둘러 있네.
진하게 고운 빛 비갠 뒤 좋은데
나그네 심정은 더욱 슬프다.
천천히 걸으니 말 탄 것 같고
외로운 꾀꼬리 노래로 달랜다.
차츰 넓은 골짜기 오르니
구름바다 놀랍게 펼쳐 있구나.
몸이 지쳐 지팡이에 의지하고
어렵게 절의 문간에 도착했네.
텅 빈 골짜기 푸른빛 윤이 나고
둘러친 산골짝 황혼이 빠르다.
샘물 찾아 바가지로 떠먹고
나무 등걸에 앉아 구름을 본다.
아마도 밀물 때가 되어 오는지
하늘 밖 먼 곳에서 파도 소리 들리네. (pp.43~44)

봄아필 / 296쪽 / A5 / 1만 3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2012-07-26 / 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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