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한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첫째 덕목은 항상 남보다 빠르게, 그리고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마법에 걸린 것처럼 너나없이 오직 선두와 일등만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언론매체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의 지표기준을 어떤 제품이 세계 1위이며, 1위를 선점한 제품이 어느 정도이냐를 따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우리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아이들의 성적은 반, 학년, 나아가 전국 석차가 어떻게 되느냐를 두고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과연 1등이 우리 인생의 총체적인 목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입니다.
1등을 위해서 학생들은 시험지 답안을 훔치기도 하고 교사들은 촌지를 받아 성적을 조작하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기밀 정보를 빼내 타회사나 외국에 팔아넘기기까지 합니다. 도로에서는 남보다 먼저 가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추월과 신호위반, 과속을 하고 무한질주를 하면서 교통사고를 일으킵니다.
무더위가 한풀 꺾여 활동하기 좋은 계절엔 무리를 이루어 등산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리를 이루어 등산을 할 때는 항상 적절한 인원 배분을 통해 구성원들의 체력을 고려한 산행을 합니다. 이때 선두에는 길잡이를 할 수 있는 인원을 배치하고 맨 꼴찌는 체력과 산행 경력이 많은 사람을 배치합니다. 이것은 산행 도중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신속히 대처하기도 하고, 나아가 구성원 전체가 무리 없이 정상에 오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리를 이루어 산행을 하면서 경쟁하듯이 오른다면 일부는 낙오를 하거나 사고를 당하기 쉬운 것처럼 불자들에게 있어서 일등과 꼴찌는 함께 성불의 길을 가기 위한 도반이며 스승인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자신의 성불을 미루더라도 지옥중생 한 명까지도 모두 구제한 뒤 성불하겠다는 대원력을 세우셨습니다. 1등은 단지 앞서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데 그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도 무진의 보살이 관세음보살의 덕을 찬탄하며 보배영락의 목걸이를 공양하자, 관세음보살은 목걸이를 둘로 나누어 석가모니부처님과 다보여래께 다시 공양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는 바로 일등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데 있음을 보여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보살은 중생의 탐욕이 빚어낸 1등의 망상을 거두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정토의 세상을 만들고자 항상 꼴찌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도 이제는 일등의 마당에서 깨어나 골찌에 머물며 이웃을 살피는 보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39호(2005년 9월 3일자)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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