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약 880Km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12제자 중 1명인 야고보가 걸었던 전도와 순례의 길이다. 이 길이 도보 여행이나 정신적, 영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여행길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그 인기에 힘입어 길을 소개하는 책자나 에세이, 소설 등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영성과 정신적 여행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리듯 산티아고를 찾는 것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예수의 복음과 사랑이 그곳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프랑스와 스페인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고대와 근대를 꿰뚫는 역사적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 우리의 궁핍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우리의 가난한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왜 그 머나먼 스페인으로 날아가야 하는가 말이다. 이 땅에는 우리의 남루한 삶을 위로해 줄 가르침과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길은 진정 없는가.
그때 저자의 눈길을 한순간에 사로잡은 인물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 하지만 그 진면목은 감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인물. 바로 한국 불교의 영원한 스승인 원효 대사이다.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 가기 위해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지금의 수원, 화성에 이르는 697Km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 파계승이 되어 민중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고, 전국 방방곡곡을 자신의 두 발로 걸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았다.
끊임없는 전쟁의 고통과 가난으로 시름하는 당시 민중들에게 구원의 희망과 사랑을 알리기 위해 원효는 걷고 또 걸었다. 원효가 걸었던 길 하나하나에는 민중을 향한 그의 사랑과 연민이 있었다. 오랜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과 정신은 그가 창건한 절,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가 걷고 앉았던 산길 위에 사라지지 않고 전설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는 오도카니 그 자리를 지켜온 원효의 삶과 가르침의 흔적을 찾아 몇 자의 글과 몇 장의 사진에 담아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왔다. 그리고 그 글과 사진은 제18회 불교언론문화상 신문 부문 최우수작이란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 책에 신문기사에 다 담지 못한 사진과 소회,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싣고, 에세이라는 글의 형식에 맞게 글 전체를 손질했다. 이것은 원효가 경주에서 수원에 이르는 그 길고 긴 길을 왜 걸었는지,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에게 물었던 그 답에 스스로 더 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원효가 평생을 두고 걸었던 697Km의 순례길은 야고보가 걸었던 길 못지않은 스케일 안에 수많은 이야기와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뒤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천 년의 역사가 배인 여러 건축물들이 전국 산하의 길과 길 사이를 장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원효가 걸은 ‘원효 길’도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국토 대장정의 도보 여행길인 동시에 여러 유물유산을 돌아보며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역사체험의 여행길이다. 그리고 원효의 정신을 되살려 체험해 봄으로써 자신의 영적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영성의 여행길이도 하다.
원효가 태어난 경산시에서 시작된 원효 길은 경주를 거쳐 원효가 창건한 천년사찰이 곳곳에 산재한 산하를 휘젓는다. 대구를 넘어 낙동강이 흐르는 안동 하회마을을 지나고 문경의 하늘재길과 남한강이 도도히 흐르는 여주 신륵사를 지나면, 어느새 그가 깨달음을 얻은 평택과 화성에 이른다. 이것은 약 880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뒤지지 않는 대장정의 길이다. 이 길 위로 저자는 원효의 행적을 큰 기둥으로 삼아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 등을 엮어 오랫동안 우리가 잊었던 원효의 순례길을 구체화했다. 이제 1300년 전 원효가 걸었던 길을 걸어보자. 그가 일생동안 설파한 사랑과 구원의 고갱이가 무엇인지,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가 무엇인지, 우리 곁에 늘 있어온 산과 강과 하늘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는지를 두 발로 걸으며 알아보자.
형설라이프 펴냄 / 224쪽 / 12,000원
기사 출처 :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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