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혜능대사께서 설하신 무상계 법문 중에 ‘서래조의최당당 자정기심성본향 묘체담연무처소 산하대지현진광(西來祖意最堂堂 自淨其心性本鄕 妙體湛然無處所 山河大地現眞光)’이란 게송이 있습니다.
그 중 첫 구절인 ‘서래조의최당당(西來祖意最堂堂)’은 무슨 뜻입니까? 서역에서 조사 스님이 불교의 당당함을 전하러 왔는데, 과연 그 당당함이란 무엇입니까? 당당한 그것을 안다면 불교의 근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무엇보다도 서역에서 조사가 무엇을 전하러 왔는가를 참구하는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고자 달마대사는 그렇게 서역에서 동쪽으로 왔고, 그 법은 다시 중국의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등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해진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고 달마 스님의 마음이며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달마 스님으로부터 전해진 이 마음은 진묵 스님의 일화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고승이셨던 진묵 스님에게는 누이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누이는 진묵대사의 도력만 믿고 수행은 물론 기도정진을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서는 진묵대사의 도력으로 자신은 수행정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묵 스님이 하루는 식사시간에 누이를 초대했습니다. 그리고는 1인분 식사만 가져오게 해서 혼자만 공양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누이가 “사람을 초대해 놓고 왜 혼자만 드십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진묵 스님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먹어야 맛을 느끼고 또 배도 부르듯이 수행도 스스로 해야만 자기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누이는 스스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내 공부만 훌륭하다고 자랑하고 다니시오?”라고 질책을 했습니다. 그제야 진묵 스님이 질책한 뜻을 알아차린 누이는 크게 반성하고 그 뒤부터 수행정진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진묵스님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자기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달마스님, 혜가스님, 태고 보우스님이 부처의 경지에 오르셨다 하더라도 현재의 우리 불자들이 스스로 발심해서 수행정진하지 않고 고승들의 행장만 이야기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의 마음자리, 달마의 마음자리, 부처의 마음자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칠순이 훨씬 넘은 나이인데도 하루에 5000번씩 염주를 돌리고 있습니다. 듣기에 따라 하루에 5000번의 염주를 돌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어렵고 고행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고행의 길이지만 한 생각 바꿔 먹으면 또 이보다 쉬운 것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모두가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불교인들이 지극정성으로 염불수행을 한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 깨끗해져 ‘불생불멸 불구부정(不生不滅 不垢不淨)의 이치를 알게 되고 만법이 마음으로 귀결된다는 진리도 저절로 알게 되어 마침내 산하대지의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33호(2005년 6월 11일자)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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