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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스님과의 인연 이야기 묶음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시작할때 그 마음으로

한 어머니가 절에 다니면서 자식을 위해 딱 한 가지 기도만 했다. 좋은 인연 만나게 해 달라고. 이만 한 기도 또 있을까. 사람살이가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좋은 인연 만나면 세상일이야 자연스럽게 풀리기 마련이니까. 여기 법정 스님과 함께 가서(同行) 법정 스님과 함께 행복했던(同幸) 열아홉 사람의 인연 이야기가 있다.

독보적인 자기 예술 세계를 구축한 조각가 최종태, 법정 찻잔으로 스님과 인연을 이어 간 도예가 김기철, 그림으로 시를 쓰는 화가 박항률, 농사꾼으로 변신한 방송인 이계진처럼 잘 알려진 분들도 거기 있고, 성철 스님 시봉일기로 유명한 원택 스님, 종교 벽을 허물고 우정을 나눈 장익 주교, 온 누리 어머니로 사는 원불교 박청수 교무와 같이 우리 시대에 큰 길을 가는 종교인도 있는가 하면, 20여 년간 스님 어머니를 모신 사촌동생 박성직, 괭이 한 자루 들고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파 내려오던 백지현, 스님이 왜 길상사에서 딱 하루만 묵으셨는지 사연을 들려 준 홍기은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법정 스님은 어떤 분일까? 또 법정 스님에게 그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법정 스님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법정 스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그 속에서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진정 전하려던 메시지가 종이에 물 스미듯 물들어 올 것이다.

반쪽짜리 제목

‘법정, 나를 물들이다’라는 제목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를 충분히 담지 못한다. 책을 마무리하는 글에서 저자는 “스승은 홀로 스승이 아니다”(351쪽)라고 밝힌다. 법정과 내(인터뷰이)가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말이다. 불이(不二)고 연기(緣起)다.

김기철 편을 보면, “스님한테 책이나 음악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저희 또한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스님께 알려 드렸어요.”(105쪽)라는 구절이 나온다. 법정 스님이 법문과 글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이런 인연으로 마련된 게 많다.

진명 스님은 법정 스님에게 퇴박을 놓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일암을 찾는 바람에 법정 스님이 참기 힘들다고 하니 진명 스님은 대뜸 “스님! 그게 싫으시면 글 쓰지 마세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도 많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찾아오는 건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144쪽)라고 윽박지른다. 법정 스님은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드셨을 거다.

이렇듯 법정과 나는 서로 주고받았는데, 책 제목은 법정에서 나온 것이 나에게 한 방향으로 흘렀음을 의미하므로, 반쪽짜리 제목이다.

법정 스님 메시지는 무소유가 아니다

저자가 출판사 사무실을 맨 처음 찾았을 때 들고 온 제목은 ‘무소유가 아니다’였다. 처음 만난 어려운 자리였지만 편집자는 말했다. “제목으로 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저자는 설명했다. “물론 스님께서 무소유를 말씀하셨지만, 그게 스님이 전하려던 핵심 메시지는 아닙니다. 저도 이 제목이 거칠고 도전적이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법정 스님 메시지를 무소유 하나로 한정하는 게 못내 아쉬워서 소리 한번 지르고 싶었습니다.”

저자가 본 법정 스님 핵심 메시지는 이 책 4장 머리글(264~267쪽)에 나와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로 시작하는 스님의 오관게 풀이에 담겨 있는 그 뜻이다. 바로 나는 나지만 내가 아니라는 것, 나를 살아 있게 하기까지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목숨들, 뭇목숨의 살신공양으로 이어온 삶을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중이 밥값이나 하고 가야겠다”던 스님 말씀의 속뜻이다. “제 몸을 기꺼이 내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머니 은혜와, 심고 가꾸고 거두어들인 수많은 손들이 흘린 땀을 헤아려, 낱목숨이 아닌 온목숨으로 살라”는 가르침이다.

12년 동안 단 1분도 없다

저자는 12년 동안 법정 스님 법회 사회를 본, ‘맑고 향기롭게’ 전 이사다. 그런데 사석에서는 스님과 단 1분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한다. 왜 그랬을까?

책에는 ‘맑고 향기롭게’ 법장궁 강정옥 이사가 들려준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류시화 시인이 와서 『산에는 꽃이 피네』 가제본을 보여주면서 편집이 어떠냐고 물었다. 말씀 끝에 류시화 시인이 “스님이 법장궁 보살님 말이라면 다 들어주시잖아요.” 했다. 이 말에 자기가 다른 이 눈에는 스님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어, 스님께 폐 끼치지 않으려고 이후에는 스님과 따로 만나지 않았다는 강정옥 이사. 저자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법회 사회를 보는 자리는 스님과 1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아 있다. 스님 숨소리 하나, 동작 하나도 그대로 전해 오는 거리다. 그래서 추억도 특별하다. 2003년 초 어느 법석에서 스님은 청법가가 끝났는데도 법상에 오르지 않으셨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그 얼마 전 스님이 “절을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해 절을 받기 민망하다.”고 하셨던 기억이 스쳤다. 그래서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니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셨다. 이 자리에서 ‘합장 반배’로 삼배를 했고, 스님도 맞절을 하셨다. 그 뒤로 스님 법회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연 이야기들

“참 그랬다” ― 장익 주교

법정 스님 다비식 장면을 혼자서 TV로 보고 나서 여러 날 동안 “참 그랬다.”는 장익 주교는, 법정 스님이 “종교 목적이 종단 구성일 수는 없다.”(21쪽)고 신념을 가지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스님과 만나서 거창한 얘기를 나눈 건 아니고 그냥 차나 한잔 마시면서 편한 얘기 나눴다고, 아주 편했다고 돌아본다.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따라 생전에 ‘천불교 교주’라고 불렸을 정도로 법정 스님은 종교 간에 벽을 두지 않았다.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 사촌동생 박성직

법정 스님 사촌동생 박성직은 스님 출가 후 20여 년 동안 스님 어머니를 모셨다. 법정 스님 어머니가 “마루턱에 걸터앉아 육자배기를 한가락 구성지게 뽑아 넘기시면, 동네 어른들이 넋을 놓고 앉아서”(271쪽) 듣곤 했다고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 소개한 두 통의 편지에서 스님은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무표정한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 사회인에겐 살아가는 데 직업이 필요할 수밖에. 하지만 인간 본래 양심이라든가 의지를 잃어버리고까지 거기에 얽매일 건 없을 줄 안다. 어쩌면 이 말은 빵의 존엄성을 모르는 철부지 말일지도 모른다만.”(273~274쪽)이라든가,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오늘 오후에야 받아 보았다. … 할머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274쪽)라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스님 입적하시기 전 아내 공덕림과 함께 병원에 찾아뵈었을 때, 아내 분이 “공덕림도 같이 왔습니다.” 하고 스님 손을 잡으니까, 스님이 손에 힘을 꼬옥 주시고는 흔드셨다. 아내 분은 그때 스님 손을 처음 잡은 거라는데. 스님이 어머니 모신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한 건 아닐까.

적(는) 자는 생존한다 ― 원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은 법정 스님과 함께 성철 스님 책 『본지풍광』과 『선문정로』를 만들었다. 며칠 동안 집중해서 원고를 손본 후 눈도 쉴 겸 바깥나들이를 했는데, 법정 스님이 몇 걸음 걷다가 수첩에 뭘 적기를 계속했다는데. “삼보일배하듯 오보일기(五步一記)를 하셨죠. 밖에 나다니면 어김없이 메모를 하시더라고요.”(113쪽) 원택 스님 회상이다.

이때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 책을 시중에 팔자는 제안을 했다.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께 이런 뜻을 밝히자 스님은 버럭 화를 내며 퍼부었다. “책을 돈 받고 팔아? 책은 법공양이야, 이놈아! … 이 나쁜 놈!” 꾸지람을 듣고 법정 스님께 전화를 드리니 이유를 설명하며 성철 스님께 잘 말씀드려 보라 했다. 다시 성철 스님께 “법정 스님 말씀이 법공양을 하면 그때 반짝하고 사라질 뿐이지만, 가격 붙인 책이 잘 나가면 영원히 물이 솟는 샘물처럼 된답니다.”(116쪽)라고 전했더니, 해거름에 “법정이 진짜 그라더나?” 하고 물으셨단다.

세 번 여쭤 허락을 얻다 ― 이계진

방송인이자 농부인 이계진은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15대 때 두 번째로 정치 입문 권유를 받고 고민을 하던 이계진은 법정 스님을 찾아가 출마를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거기 가면 차 맛을 잊어버릴 거요.” 스님의 단호한 말씀에 출마하지 않기로 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16대 때 다시 고민에 빠져 스님께 여쭸더니, 스님은 “기도해 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세요.” 했다. 출마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는데, 또 마음이 편안해졌다. 17대 때 출마 결정 내리고 스님을 찾아뵈었더니 “나이가 들면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할 수 있다.”며 인가해 주셨다. 이계진은 법정 스님 가르침이 “중이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어?”에서 시작한다고 회고한다.

길상사에 하루 묵으신 이유 ― 홍기은

홍기은 거사가 떠올리는 법정 스님은 지독하신 분이다. 길상사 법회가 아무리 밤늦은 시각에 끝나도 어김없이 차를 몰고 암자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님 연세에 늦은 밤 운전하시는 게 걱정도 되고, 또 왜 그러시나 싶기도 해서 여쭈었다. “한 절에 주지가 둘이 있으면 안 돼요. 아니 할 말로 나 보러 오지, 주지 보러 오겠어요?” 법정 스님 말씀이다.

결국 스님은 길상사에서 딱 하루 묵으셨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어쩔 수 없이.

<불광출판사 / 352쪽 / 1만 5천원>

 

2012-02-25 / 3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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