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바로화합(和合)입니다. 불교의 ‘승가(僧伽)’라는 말은 자체가 ‘화합중(和合衆)’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법은 화합을 근본으로 삼는데, 부처님께서는 교단의 화합을 위하여 대중이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세를 일깨우고자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六和思想)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째는 몸의 화합으로 함께 살며 한 몸같이 일하는 자세(身和同住)이며, 둘째는 입의 화합으로 다툼 없이 지내는 자세(口和無諍)입니다. 셋째는 뜻의 화합을 말하니, 어기는 일이 없이 한마음으로 수행하는 자세(意和無違)입니다. 넷째는 계율의 화합을 말하며, 함께 지켜 참되이 수행하는 자세(戒和同遵)입니다. 다섯째는 견해의 화합이니, 함께 이해하는 자세(見和同解)이고, 여섯째는 이익의 화합을 말하며, 고르게 분배하여 평등심을 갖고 남을 존중하는 자세(利和同均)입니다.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분단 반세기를 훨씬 넘기고 있지만, 통일은 남과 북이 화합하려는 자세와 마음만 있으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북 간의 왕래도 어느 정도 활발해졌고, 정부 간 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남북교류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정말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바람직한 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 통일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서로 의심하는 마음, 오해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히 좋은 통일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광법사가 제안한 신라의 세속오계가 삼국통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원효대사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 삼국통일 후에 분열되고 상처받은 민심들을 수습해 국가통합의 이념이 되었듯이, 오늘날 한국불교 또한 1600여년 역사를 가진 전통 민족종교로서 남북한 민중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통일의 이념을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하심(下心)의 자세도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남·북한간의 대화와 협상은서로 대등한 위상을 가지고 진행해야겠지만, 상대방의 이념과 체제를 존중하고, 동족으로서 상대방이 겪는 아픔과 어려움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법화경(法華經)》‘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보면 부처님의 전생인 상불경보살은 항상“나는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당신들이 장차 다 부처님이 되실 분이기 때문에 당신을 존경합니다” 라고 하며 결코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거나 천시하지 않고 받들었다고 합니다.
이제 남쪽 불교계는 나름대로 위축되어 있는 북한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한 포교방안을 미리미리 수립해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는 것도 민족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위한 준비의 하나일 것입니다.
서로 화합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안 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통일은 얼핏 머나먼 미래의 일 같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화합만 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깃발을 보면 수레에 누가 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고, 산너머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불이 난 것을 알 수 있듯이, 그 나라의정치인을 보면 그 나라의 사정을 알 수 있다”는《잡아함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남북이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으며, 서로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는 남북지도자들의 자세가 절실한 때 입니다.
만불신문 121호(2004년 11월 27일 발행) 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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