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귀찮아도 내 존재를 알려야 하는 장소야.
한 뼘도 안 되는 엉덩방아를 찧지 않으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놓으면 천길 만길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아찔해서 못 놓는 현실.
이 책은 '너'라는 대상을 만나지 못해 독백이 습관인 한 젊은이가 새벽 여행을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둠이 밝음을 마중하고 밝음이 어둠을 배웅하는 곳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아무것도 없는 백지 같은 공간에 자신을 한 점으로 찍어두고 선을 그리듯 그렇게 젊은이는 걸어간다. 그는 침묵하는 것에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이며 내 마음이 머물 수 있는 너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밝음이 어둠을 맞이하고 어둠이 밝음을 보내는 저녁에 지쳐서 다시 돌아온다. 그는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링반데룽처럼 그리움이 날마다 반복하며 새벽이나 이른 아침부터 떠나 결국 저녁에 외로움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독백하는 사람은 침묵하는 플라타너스 나무와 천년 바위 그리고 가로등에게 대화를 청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그들을 알지 못하던 그가 그들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 '이해'라는 마음길을 내자 조금씩 그들이 가진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 때 나뭇잎 하나가 소르르 나뭇가지에서 떼어지며 허공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나는 바람 타고 길을 묻는 낙엽이지. 내가 어디에 놓이든 나에게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있었다는 낭만을 잊을 수 없지. 날아보고 싶었어. 분리되기는 싫었지만 나는 지금 내 마음대로 날고 있는 거라고. 나의 자유는 결코 추락이 아니야. 의미를 찾는 중이라고. ---본문 중에서
이렇게 그는 자연과의 소통을 하며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어느 날은 한 여자가 그리워져 겨울바다로 달아나게 되는데, 백사장에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발자국들과 대화하며 결국 외로움에 솔직해진다. 또 비 내리 날, 아프게 찔러 대는 바늘비를 맞으며 마음의 소리로 비명을 질러 대기도 한다.
바늘비 맞아봤어?
나, 지금 이 빗방울 하나하나가 바늘로 찌르는 것만큼 아파.
---본문 중에서
그는 살아 있는 한 어제 그랬듯 오늘도, 내일도 그리움과 외로움은 반복된다고 투덜댄다. 그리고는 결론짓듯 말한다.
외로움의 끝이 너라면 그리움의 끝은 나야.------본문 중에서
먹어야 사는 것의 부당함에 대해 따지느라 하늘에 삿대질을 해 대던 그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야 한다며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그 영혼은 다름 아닌
내가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너를 찾는 일'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누구나 그리워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인생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일이며잃어버린 나인 너를 찾아가는 먼 여행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롭다는 것은 내 마음의 소리를 전하고 싶고 너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 오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그냥 스치고 지나칠 법한, 아니 너무나 일상적이고 흔한 것들이어서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에게도 하나하나 그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심어 준다. 말이 없지만, 말할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읽고 배려하는 그리고 생각하게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시인으로서의 섬세함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시적 특유의 문장을 창조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가슴 져미는 여운을 갖게 한다.
마음이 하는 말은 밖으로 소리 내지 않는다. 침묵이란 그런 것인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듯 가로수로 서 있는 플라타너스의 침묵도 또 다른 언어가 아닐까?
작게 말해도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고, 다른 사람이 화내는 소리가 그 다음 크게 들리고, 내 욕심을 도와주는 소리가 그 다음으로 들려. 착한 소리와 진실의 소리들은 잘 들리지 않아.
지은이 소개
저자 이중삼
충북 충주 살미 솔고개에서 태어났으며,
시(詩)로 한국문인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시집으로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가 있고,
소설로 『하늘바라기』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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