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선지자(先知者)로서 표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행자가 지성인으로 존경받지 못하게 된 이유는 병든 사회현상을 진단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지혜롭게 치유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른 수행보다는 아만과 계금취견(戒禁取見)에 빠져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올바른 선지자적 역할을 못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지성이 마비되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자성(自性)은 원래 소소영영(昭昭靈靈)하여 매(昧)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곧 각(覺)이며, 생멸이 없으므로 번뇌도 없음을 확신하고, 불퇴전의 마음으로 고칙참구(古則參究)에 매진하여야 합니다. 즉 청정계율을 지키고 수행에 전념할 때, 고요하면서도[寂]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상태[惺]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때 비로소 삼매(三昧)에 이를 수 있으며, 이를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하니 이 경지에 이르도록 삼학(三學)을 수행의 근본 길잡이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참구하는 방법에 있어서 태고보우국사께서는 ‘시중법문(示衆法門)’에 “역력성성(歷歷惺惺), 밀밀참상(密密參詳)하라”고 하셨으며, 서산스님께서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참구하는 공안(公案)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如鷄抱卵] 하고, 고양이가 쥐들 잡듯[如猫捕鼠] 하며, 굶주린 사람이 밥 생각 하듯[如飢思食] 하고,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如渴思水] 하며, 어린아이가 엄마 생각하듯[如兒憶母] 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할 때가 올 것이다[必有透徹之期].”라고 한 말씀들은 수행자로서의 마음을 다잡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오극근 선사의 100칙, 무문혜개 선사의 48칙 등 천 칠백 가지 고칙들의 수시(垂示), 송(頌), 평창(評唱), 착어(着語) 등의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하여 정법의 안목을 넓히면, 참구지도의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할 것입니다.
오로지 최상승선(最上勝禪)의 참구자는 이번 안거동안 방하착(放下着)하고, 호시우행(虎視牛行)의 마음으로 올바른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라 온 정성을 기울여 추번뇌(?煩惱)와 세번뇌(細煩惱)를 항복받고, 반드시 공적영지(空寂靈知)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하기 바랍니다.
空寂山堂夏安居(공적산당하안거) 靜坐可得太古音(정좌가득태고음) 終見堂前物開眼(종견당전물개안) 綠陰鳥歌草自靑(녹음조가초자청)
지극히 고요한 산사에서 하안거에 들어 고요히 앉아서 가히 태고의 소리를 얻고, 마침내 토굴 앞에 있는 만물이 눈을 뜸을 보리니 녹음 속에서 새가 노래하며 초목은 스스로 푸르도다.
한국불교 태고종 종정 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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