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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도법 스님의 화엄경 보현행원품 강의     

“아내에게 꽃을 바쳐 보세요. 인생이 단박에 편안해집니다.”

“아내가 집에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집안일에 관심이라곤 없어요.” “부모님이 저를 믿어 주시지 않아요.”

절에 오는 사람마다 고민 보따리를 풀어놓고 답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스님이라고 뾰족한 해결책을 알고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해줄 말이 떠오른다. “소원 이뤄 달라고 불상에 꽃도 올리고 절도 하듯이 집에 가서 아내에게(남편에게, 부모에게) 온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 보세요. 그러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일단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게 부처님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이유이자, 불가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병에 따라 약으로 준 것”이라 표현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도법 스님이 보기에 요즘 사람들은 절에서만 열심히 수행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대충 산다. 마치 일이 있을 때마다 불상에 꽃다발을 바치면서 아내에게는 꽃 한 송이 선물하지 않는 남편과 같다. 그 남편이 행복을 원한다면, 그게 제대로 이뤄지겠는가?

지리산 자락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열고 15년 넘게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아 온 도법 스님이, 화엄경 보현행원품을 주제로 실상사에서 1년 동안 강연을 맡았다. 이 강연에서 스님은 ‘부처로 사는 10가지 방법’인 보현행원품이 바로 ‘날마다 좋은 날 만드는 10가지 방법’임을 생활 속 이야기들을 통해 알기 쉽게 이야기했다. 이 책은 이 강연을 정리하여 묶은 것이다.

생일만 되면 골치가 아픈 부처님

부처님오신날에는 사람들의 소원 수만큼 연등이 걸린다. 그걸 보는 부처님 마음은 어떠할까? 한편으로는 좋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깨가 굳고 뒷목이 뻣뻣해지고 골치가 아프지 않을까.

도법 스님은 말한다. “모두들 생일을 맞은 부처님의 소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소원만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지요. 아마도 부처님한테는 제일 골치 아픈 날이 사월초파일일 것 같습니다.” 생일이면 응당 생일을 맞은 사람이 가장 반길 선물을 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가장 반길 생일 선물은 무엇일까?

부처님 소원은 딱 하나

부처님 소원은 딱 한 가지다. 바로 세상 사람들이 감은 눈을 뜨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눈을 덮고 있는 망상을 걷어 내라는 주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걸 바란 부처님은 왜 그런 소원을 갖게 되었을까? 세상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게 도대체 행복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 도법 스님은 산사태를 맞은 한 사찰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승련사라는 비구니스님 사찰에 산사태가 난 일이 있었다. 밤중에 흙더미와 바윗돌들이 무너져 내려 건물 안까지 밀려들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전기시설까지 망가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움직이면 사태를 악화시킬 것 같아, 스님들은 칠흑 같은 밤 내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건물 안에 갇혀 있었다. 이윽고 날이 새자 상황이 환히 보여 마음이 놓였고, 비로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 하며 세상살이가 불타는 집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산사태가 난 승련사의 스님들처럼 사람들도 항상 위험과 고통 속에 산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면, 승련사의 스님들이 날이 샌 후 조치를 취한 것처럼 고통들을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바로 보는 게 행복의 필요조건이라는 뜻이다.

당신의 미소가 의미하는 것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로 답한다.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면 아내는 환한 미소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영험이 즉시 나타나는 것이다.

상대에게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이런 반응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본래부터 부처다. 우리 자신 역시 그렇다. 자신의 행동이 남을 행복하게 만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는가. 그게 바로 부처님의 미소다.

네가 바로 부처다

도법 스님이 이 책 내내 강조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부처가 우리 안에 있으니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는 이야기다.

“바로 당신이, 지금 당신과 만나고 있는 상대방이 부처이니, 부처로 마음먹고 부처로 행동하고 부처로 모시면서 살라. 그게 행복의 길이다.”

스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불성이 깃들어 있으니 생명 자체를 부처로 보고 부처로 모시면서 살라고 당부하고 있다.

날마다 좋은 날 만드는 10가지 방법
하나, 뭇 생명을 섬겨라.
둘, 뭇 생명을 찬탄하라.
셋, 뭇 생명을 공양하라.
넷, 뭇 생명에 대한 무지와 무례를 참회하라.
다섯, 뭇 생명이 지은 공덕을 함께 기뻐하라.
여섯, 뭇 생명에 가르침을 청하라.
일곱, 뭇 생명이 온전히 제자리에 머물기를 청하라.
여덟, 뭇 생명을 따라 배우라.
아홉, 뭇 생명을 따르고 받들어라.
열, 내가 지은 공덕을 뭇 생명과 나누어라.

도법 스님

한국 불교 개혁과 생명평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1990년 개혁 승가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 불교 운동을 이끌었으며, 1995년 지리산 실상사 주지로 부임하여 귀농학교, 대안학교, 환경운동 등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2001년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좌우익 이념 대립 희생자를 위한 지리산 위령제’와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지리산 1000일 기도’를 주도했다. 기도 끝에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얻은 스님은, 실상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고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5년 동안 3만 리의 길을 걸으며 8만 명의 사람을 만나 생명평화의 삶을 함께했다.

현재 지리산 실상사 회주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 화쟁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길 그리고 길』, 『화엄의 길, 생명의 길』, 『청안청락하십니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내가 본 부처』,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등이 있다.
2008년 포스코청암상 봉사상을 수상했다.

2011-10-15 / 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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