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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사 창건 역사와 유물’ 특별전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불교중앙박물관(관장 원학 스님)은 2003년 조계사 대웅전 보수공사를 진행할 때 발견된 조계사 대웅전 상량유물과 관련자료 일체를 보여주는 2013년 봄 기획전 ‘조계사 창건역사와 유물’을 오는 8월 11일까지 전시한다.

이번 기획전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1938년 조계사 대웅전이 건립되었을 당시 불교의 상황과 생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자료들로 총 240점에 달한다.

불교중앙박물관은 “조계사 대웅전의 건립은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한계 속에서 자주적인 한국불교를 세우고자 했던 중요한 사업이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 대중들이 조계사 창건의 역사와 의미를 새겨보고 1930년대의 생활상과 조계사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별전은 네 개로 나뉘어 구성됐다.

1부. 일제강점기의 불교와 조계사의 창건

조계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 각황사覺皇寺로 사대문 안 최초의 사찰로 창건되었다. 1938년 자주적인 한국불교를 세우기 위하여 총본산으로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을 설립하고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북한산 태고사太古寺를 이건하는 형식으로 태고사로 명명한 뒤, 1954년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지금의 조계사曹溪寺로 명명하였다. 191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불교 중심에 있는 조계사는 창건 과정부터 자주적인 한국불교를 되살리려는 치열한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2. 조계사 대웅전을 만든 인물

조계사 대웅전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건립되었다. 또한 당시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건물이었던 만큼 최고의 인물과 장인들이 이 건물을 세우는데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암智庵 종욱鍾郁 스님, 도편수 최원식崔元植, 화사 금용金蓉 일섭日燮 스님이다.

지암 종욱 스님은 대웅전 건립을 총괄하신  스님으로 총본산 건설 31본산 주지 대표로 선출된 후, 보천교 십일전을 1만 2천원에 매입하여 총본산 대웅전 건립을 진행하신 분이다. 대웅전 건립을 맡았던 도편수都片首 최원식은 1920년대 창덕궁 대조전 재건 공사를 총지휘한 도편수로 조계사 대웅전 건립을 위해 경복궁과 덕수궁을 조사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내외벽의 단청, 벽화, 영산회상도 등 대웅전을 장엄하는 일에는 당시 불교계 최고의 화사였던 금용 일섭 스님이 담당하였다.

3. 조계사 대웅전 발견 상량유물

대웅전의 상량문은 조선불교총본산대웅전상량문朝鮮佛敎總本山大雄殿上樑文, 총본산건설소역원總本山建設所役員, 총본산건축비각사부담액總本山建築費各寺負擔額, 관서질官署秩과 같은 네 장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은 당시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였던 권상노勸相老가 작성하였다. 내용 중에는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가 외친 ‘심전개발心田開發’을 기념하기 위하여 총본산 대웅전을 지었노라고 적고 있어서 당시 시대상황과 총본산 건설과정의 서글픈 우여곡절을 짐작케 한다.

각사부담액은 대웅전의 건설에 참여한 31본산의 부담액을 적은 문서로 31본산에서 이건축비로 총 100,402원 47전을 함께 모아 건축비용을 부담한 내용이 적혀 있다. 현재 가치로 약 100억 원 정도의 금액으로 추정된다. 건설소역원은 대웅전을 건설한 실무 담당자들의 이름이 적힌 문서이다. 당시 설계 담당과 관리직들은 모두 이왕직李王職 영선과 소속 일본인들 이었으나 사실상 대웅전 건립은 모두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 졌다.

부처나 보살에게 소원을 비는 행위를 발원發願이라고 한다. 대웅전이 건립될 당시 많은 사부대중의 참여로 조계사 앞마당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이들 가운데 간절한 소망과 진실한 마음의 원을 세워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을 받고자 개개인의 소중한 물건을 대웅전에 넣어두었다. 여러 유물 가운데 개개인의 이름이나 법명 또는 발원의 내용을 간략히 적은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주로 은판, 뒤꽂이, 귀이개 등 유물의 표면 또는 작은 종이에 본인의 이름이나 법명을 적었으며, 건강, 자손의 번창, 복 등을 기원하는 발원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4.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을 낙성한 1938년 이후,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북 분단과 6.25전쟁이라는 큰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태고사 역시 수난을 당했다. 6.25전쟁 과정에서 요사채가 반파되고, 대웅전도 우측 처마에 포탄을 맞아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불교계의 중심 사찰로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54년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태고사를 현재의 이름인 조계사曹溪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38년 대웅전 건물만 있던 조계사는 시간이 흐르며 현재는 극락전, 안심당, 불교대학, 조계사 도심포교100주년기념관, 신도회관 등이 들어섰고 2002년에는 대웅전을 해체 보수하고 2005년에는 일주문을 짓는 등 다양한 변화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현재 조계사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과 창덕궁, 근래 새롭게 정비된 청계천, 한국 미술문화의 중심지인 인사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도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적으로 선양하고 도심포교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사진> 조계사 대웅전 이건
출처 : 조계종 보도자료

2013-05-27 / 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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