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진실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말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내 감정에 속지 않고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불자님들은 개개인이 살아온 인생을 한 번 뒤돌아보십시오. 감정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몸뚱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먹을 것을 주고, 화를 내달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주는 등 감정이 해달라는 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사는 시간이 많았지, 참 마음이 주인이 되어 행동을 하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임제 스님은 “수행자가 부처를 구하면 부처를 잃게 되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를 잃게 되고, 도를 구하게 되면 도를 잃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어떻게 주인노릇 해야 되며, 내 주인이 어떠한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가를 정말 잘 표현한 세계입니다.
모양이 있거나, 무슨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주인자리가 아닙니다. 허공은 중생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부처님만이 볼 수 있습니다. 허공은 먹물을 끼얹어도, 침을 뱉어도 묻지 않고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 안에서 몸이 썩지 않도록 지켜주는 주인공, 법문을 들을 줄 알고 눈을 뜰 줄 알도록 하는 그 기운이 내 마음의 주인공일진대, 주인을 내버려두고 감정이 하자는 대로 도둑이 주인노릇 하도록 가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내 것이라고 하는 내 몸뚱이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가족들을 내 마음대로 하고 이 세상이 어떻게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겠느냐. 이 세상이 마음대로 되고 내 가족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거든 마음을 먼저 길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부처라고 하는 법당에 내 스스로 감정과 욕망을 불러들여 도둑이 주인노릇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일은 부처님을 믿는 제자라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자님들은 자신의 주인공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눈으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있습니까? 마음을 갖고 마음을 보면 마음이 보입니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찾으려고 합니다. 이는 나와 대상이 따로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지 못하듯이 마음이라는 것은 주인과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입니다. 찾으려고 하면 이미 잃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를 구하면 부처를 잃게 되는 것이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를 잃게 되고, 도를 구하면 도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급합니다. 그런데 도를 그렇게 빨리 얻을 수 있으면 누가 얻지 못하겠습니까. 또 참선을 하다 뭔가가 보인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그림자지 실상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마음의 그림자가 밖에 나가서 황금색으로도 보이고 부처님으로도 보이는 것이니 절대로 현혹되지 마세요.
성인은 씨앗을 심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중생은 결과만을 중요시합니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 절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째서∼’하고 의심을 품는 그것이 바로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수행자는 도를 깨닫는 걸 목적으로 수행을 해야지, 하는 도중에 뭐가 나타나거나 뭐가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을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부터는 오로지 화두를 등불로 삼고, 스승으로 삼아 화두에 의지해서 망상번뇌에 속지 말고 공부에 매진하세요. 화두 수행하는 그 시간 만큼은 내가 나와 같이 춤을 추는 시간이고, 부처와 같이 있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것이라면 화두수행에 나를 바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10호(2004년 6월 26일자)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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