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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禪”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불교는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럼 무엇을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직업의 귀천이나 신분,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결국엔 죽음에 이릅니다. 그럼 왜 사람은 반드시 죽음을 겪어야 할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바로 이 점을 밝히기 위해 용맹정진 하셨고, 결국 그 해답을 ‘깨달음’에서 찾았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와 제일 가까운 것이 ‘나’이며 비로소 ‘나’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나’인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고 ‘나’를 떠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 즉 ‘나’를 모르는 이유는 온갖 번뇌·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도 모릅니다.

중국의 달마대사는 “중국에 진정한 불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대형불사를 하고 염불·참선 등의 수행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불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이를 통해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 ‘불교’라고 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로 본다는 것일까요. 이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마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 같은 질문에 어떤 선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바로 질문한 것이 너의 마음이고 답한 것이 내 마음이다. 그대가 마음이 없다면 어찌 질문을 하겠으며, 내가 마음이 없다면 어찌 대답을 하겠는가. 이 마음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한 번도 생겨난 일도 죽은 일도 없었다. 이 마음을 보라. 만일 보지 못한다면 염불이나 관(觀)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다.”고 말입니다.

초기불교에서 최고의 경지인 ‘무위법(無爲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밥도 먹지 말고, 노동도 하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위’란 손님이 왔을 때 손님이 온 것을 알며, 내가 마이크 앞에 앉아있다면 마이크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알며, 종소리가 났을 때 종소리가 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럼 어째서 종소리가 나는 것을 압니까. 그 소리가 내게로 들려왔기 때문에 알죠. 그런데 다른 생각에 빠져있으면 소리가 나는데도 난 줄을 모르고, 사람이 와도 온 줄을 모릅니다. 모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소를 할 때나 손님이 왔을 때 딴 생각하지 않고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결국 일상생활 자체의 모든 물체마다 진리 아닌 것이 없고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선은 특정한 모양이나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를 볼 때, 식사할 때, 매 순간 순간 충실히 대하는 것, 바로 그 자체가 ‘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을 멀리서만 찾으려 합니다. 운전하는 것과 비유를 해볼까요? 여러분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와이퍼가 차창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면, 그 틈새로 사물이 보이는 것과 같이, 어떤 일을 할 때도 이 생각 저 생각하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모든 망상을 뚫고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확고한 힘. 바로 이 같은 힘이 있는 실생활이 바로 ‘선’입니다.

여러분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중간하게’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의심 없이 확실히 알고 확실히 이행하면 일상 자체가 ‘삼매’이며, 인생 자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어떤 망상과 번뇌가 와도 마음의 흔들림 없이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일체 만물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00호(2004년 1월 31일자)에서 가져왔습니다.

2011-06-10 / 4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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