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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올곧게 써야 成佛 이뤄”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불자들이 절에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백팔참회, 참선, 염불 등을 하는 것은 마음 가득 자리하고 있는 탐·진·치 삼독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거울에 먼지가 가득 끼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듯이 마음에 삼독이 가득하면 성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자들은 자신의 업장을 소멸해 복을 짓기보다는 남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참회에 그치고 있습니다. 또 절에 오는 불자들이 욕심에 찬 발원만 하고 갑니다.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아픈데 낫게 해달라.”는 발원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마음을 갖든지 부처님이 복을 주고, 약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이지 마음에 욕심이 꽉 차 있는 상태에서 부처님에게 절을 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렇게 부를 축적한다 해도 그것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고 선량한 사람을 속이는 등 부당한 방법으로 쉽게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으려는 이기적인 발상이 팽배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발상 때문에 불신이 쌓이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조금은 손해본다는 마음으로 형제·가족·이웃을 대한다면 복은 자연스럽게 찾아 올 것이며, 불신도 싹트지 않을 것입니다.

가령, 어린아이에게 “예쁘다.”하면 무릎에 와서 앉습니다. 하지만 버럭 화를 내면 멀리 달아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복이 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내 이웃에게 마음을 썼는지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어머니들은 딸에게 “결혼하면 시집살이 못한다고 집 얻어 달라 해라.”라며 자식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육받은 딸이 자신의 며느리로 들어온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또 결혼한 딸이 남편과 다투고 집에 오면 “당장 이혼해라. 남자가 어디 그 사람 한 사람 뿐이냐.”고 말합니다. 이렇다보니 이혼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것이 업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집안에 그렇게 교육받은 며느리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이 이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부인들의 과욕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부인들의 과욕 때문에 남편들만 불쌍해졌습니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대우받고 살았지만, 최근에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부인들은 항상 부족하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것은 남편에게 도둑질하라고 선동하는 것입니다. 혹여 조금의 여유 돈이 생겨 부모님에게 드리면 부인들은 “내가 식순이냐.”는 식으로 말합니다. 남편을 다그쳐 결국은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그렇다보면 가정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부처님 도량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절에 가서 스님, 스님하며 보살인 것처럼 행동하는 불자들이 밖에 나가면 사찰에서 보여준 자비스러움은 없어지고, 심술만 남아서 일반사람을 대하니 일이 잘 되겠습니까?

가정에 가서도 절에서 스님들에게 배운 그 마음이 바로 남편과 자식,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에게 전달돼 모두를 부처님처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을 부처님처럼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 위에 있는 거품이 사라졌다 해서 그것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거품이 다시 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을 잘 못 쓰는 사람 주위에는 이웃도, 친구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을 때 용심(用心)을 잘하면 한 폭의 잘 그려진 그림처럼 얼굴이 아름다워집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예쁘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움을 말한 것 뿐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내포한 표현입니다. 불자들이 이 절, 저 절 찾아가서 부처님을 찾기보다는 가족, 이웃을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모두들 아름다움을 발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을 짓는 길이고, 성불을 이루는 길입니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논리적, 체계적으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배고플 때 밥 먹을 사람이 여기에 재료가 얼마 들어가고, 영양가가 얼마 포함되어 있고, 또 몸에 좋은지 나쁜지 따지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 때문에 인간들에게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슨 병이냐 하면 그것은 ‘안다는 병’ 입니다. 너무 많이 듣고 너무 많이 알아도 불교에서는 병이 됩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사람도 알수록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 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을 수행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부처님은 경전에서 ‘자정기심성모향(自淨其心聖母鄕)’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티 없는 마음씨가 우리들의 고향’이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진리는 이 우주공간에 다 있지만 남을 해치고, 속이려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진리를 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부처님 말씀 속에서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부처님이 어디 먼 데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성불하는 길을 다른 먼 곳에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항상 베푸는 마음으로 서로를 돕는 것이 바로 성불의 길이고, 부처님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한 불국토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이웃’을 돕고, 이웃이 ‘나’를 배려한다면 지금 불자들이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불국토인 것입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87호(2003년 7월 26일자)에서 옮겨왔습니다.

2011-03-04 / 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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