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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장경은 송 개보대장경의 짝퉁?”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올해(2011)는 초조대장경(고려 현종 2년, 1011년)의 조판이 시작된 지 꼭 1천 년이 되는 해다. 경남을 중심으로 곳곳은 축제 준비로 부산하고 공중파에서도 대작 다큐를 여럿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고려대장경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자부심이 남다르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그 자부심 속에는 수많은 오해가 엉켜 있다.

“단 하나의 오자도 없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글자가 정연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등등.

하지만 이 말들은 모두 가짜다. 우선 초조대장경은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엎어놓고 베낀 것이고 재조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또 초조대장경을 놓고 베낀 것이니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라는 말도, 글씨가 수려하다는 말도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니다. 오자는 초조대장경의 오자를 바로 잡은 과정을 보여주는 재조대장경의 『교정별록』에 조차도 수없이 등장한다. 모두 전설이나 신앙이 역사적 사실을 뒤덮은 경우다. 하지만 이런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고려대장경의 역사적·문화적·기술적 의의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대장경에 성경이 들어 있다면?

발칙한 가정인지 모르겠지만 천 년이 지난다면 대장경에 『성경』이 들어갈지도 모른다. 흔히 대장경은 불교의 경율론 삼장을 모아놓은 것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대장경에 포함된 1천5백여 종의 책 중 삼장에 속하지 않은 문헌만 100여종 가까이 된다. 기원전 2세기 서북인도를 점령하고 있던 그리스계 메난드로스 왕과 승려가 논쟁을 하고 있는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흔히 『밀린다팡하』라고 불림)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그리스철학과 불교철학의 역사적 만남을 다룬 저작이다.

아예 다른 종교의 성전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금칠십론(金七十論)』과 『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은 소위 불교 입장에서 보면 외도(外道)의 문헌들이다. 『금칠십론』은 인도 육파철학의 하나인 수론종(數論宗), 상키야 학파의 문헌이고 『승종십구의론』 역시 육파철학의 하나인 승론종(勝論宗), 바이세시카 학파의 문헌이다. 두 문헌 모두 왕 앞에서 논쟁이 진행된 것을 적은 것인데, 불교는 이 논쟁에서 철저히 패배했다. 이런 문헌들도 대장경에 입장(入藏)되어 있다.

대장경은 이런 것이다. 대장경에는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불교 경전이 결집되고 이후 1천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진행된 동아시아 지식의 흐름들이 꽤 많이 녹아 들어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대장경들에 포함된 목록들을 보면 더 극적이다.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1912∼1925)에는 경교(景敎)의 문헌 3종을 포함시키고 있다. 경교는 중국 당나라 때 장안으로 들어와 정착했던 기독교의 일파, 이른바 네스토리우스파의 성서들이다. ‘메시아가 설한 경’이란 뜻의 「서청미시소경(序聽迷詩所經)」은 심지어 경(經)이라는 이름까지 달고 있다. 「경교삼위몽도찬(景敎三威蒙度讚)」도 들어 있다. 삼위는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한다. 「경교삼위몽도찬(景敎三威蒙度讚)」은 곡을 부쳐 찬송가로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7세기 기독교의 성경, 아라아(阿羅訶), 미시아(彌施訶) 등의 구절을 한문대장경 안에서 읽는 일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문헌들을 대장경 안에 포함시키는 까닭은 이들이 불교의 석굴사원에서 대량의 불전과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문으로 번역된 이들 기독교 성경들은 역시 한문으로 번역된 불전들과 아주 닮았다. 중동에서 유래하여 서구에서 단련된 기독교와 인도에서 유래하여 서역에서 단련된 불교가 당나라 장안에서 만났던 기억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던 서역과 장안의 지적, 종교적 분위기도 담겨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장경의 역사가 계속 발전하여 미래에 대장경을 새로 조성해야 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면, 미래의 대장경 안에는 기독교의 신약성서라든지, 이슬람의 코란 등은 물론이고, 종교 간의 대화나 논전에 대한 기억들이 포함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때도 이런 기억들을 통칭하여 ‘대장경’이라 부를 것이다.

대장경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 교정이야기

이 책은 송나라 개보대장경으로 시작해 초조대장경 그리고 재조대장경으로 이어지는 교정이야기를 굉장히 풍부히 다루고 있다.

사실 고려대장경의 역사에 있어 교정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재조대장경은 각판을 위해 우선 국본(초조대장경), 단본(거란본대장경), 송본(개보대장경)을 놓고 비교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차이가 발견되면 먼저 문맥을 살핀다. 앞뒤로 말이 연결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음에 내용을 살핀다. 추가된 문장의 내용이 이 책의 취지와 일치하는지를 검토하는 일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일례로 재조대장경에 있는 『아비담비바사론』의 경우는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사이 약 455자의 차이가 보인다. 초조대장경에서 임의로 삽입한 것이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455자의 출신과 성분을 추적해야 한다. 455자라면 작은 양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된 경전일 수도 있는 양이다. 그 부분이 거기에 왜 있어야 했는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다른 곳에서 왔다면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비담비바사론』의 경우는 일이 거기서 끝났다. 출신성분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저 한으로만 묻어 둘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정을 본 경전의 말미에 기록을 남겨 ‘미래의 현명한 사람들에게 고(告)한다’고 했다.

물론 재조대장경에만 유독 교정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단본(거란본대장경)에도 이런 교정의 흔적은 남아 있다. 하지만 재조대장경이 저본으로 사용했다는 북송본, 국전본, 국후본, 거란본…. 여기까지만 해도 이만오천 권이 넘는다. 여기에 수종의 필사본, 주석서 등 여러 판본들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다. 21세기가 아닌 13세기에 강화도에서… 그것도 전쟁통에… 믿기가 어려운 얘기다. 5만2천 자, 1500여 종의 문헌, 그것도 구두점도 없는 새카만 한문본을 교정하는 일이 16년만이라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다. 고려대장경이 가지고 있는 우수성은 바로 이 교정 이야기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천 년의 지혜를 천 년의 미래로

인도에서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사십이장경』이라는 경전을 들고 온 것이 서기 67년이다. 중국에 들어온 최초의 경전이다. 그리고 고려에서 대장경이 만들어진 것이 꼬박 1천년 후다. 그리고 이제 그 대장경이 만들어진 지 또 꼬박 1천 년이 흘렀다.

부처님의 말씀이 1천 년 그리고 또 1천 년을 넘겨 계속 버텨온 것은 ‘그릇’ 때문이다. 부처님은 최초에 아난을 ‘그릇’으로 선택했다. 그 그릇은 다시 결집으로 그리고 목판대장경으로 그리고 마침내 인터넷의 바다로 던져졌다.

저자 1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려대장경을 이처럼 ‘그릇’으로 묘사한다. 대장경은 “말씀을 담는 그릇”이었다가 전쟁통에 “깨진 그릇”이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천하를 담는 그릇”이었다가 마침내 “소통하는 그릇”으로 승화한다. 이 그릇은 또 어떤 식으로든 진화할 것이다. 그 진화의 중심에는 불교적 상상력과 개방성이 있을 것이다. 마치 고려대장경이 뒤죽박죽이었던 경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경전이 문자로 결집된 천 년 후 만들어진 고려대장경, 고려대장경은 동아시아 지혜의 그릇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계속되는 오해를 벗겨내고 이어 고려대장경에 숨어 있는 진실과 가치를 좇아간다. 


<불광출판사, 400쪽, 2만원>


출처 : 출판사 리뷰

2011-02-07 / 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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