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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과 相을 벗은 자연인 되어야”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참’이라는 말을 우리는 참 좋아합니다. ‘참’이란 진실이자 본질이며, 세상의 인위적인 조작을 탈피한 원래 그대로인 자연부처가 바로 참입니다.

참 지도자, 참 교육자, 참 진리, 참 지혜, 거짓말이 아닌 참말 등 요즘에 주로 사용되는 ‘참’이란 말 앞뒤에 붙는 모든 수식어구들과 따로 떼어 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이란 말하고자 하는, 표현하고자 하는 본래의 그것을 남들이 믿지 못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붙여지는 현대의 허울 좋은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이면 지도자이지 참 지도자 따로 있고, 그냥 지도자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참이라는 말을 사용해만 하느냐, 그것은 바로 본질인 진실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어디에 있는데 찾지 못하느냐, 바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것을 예의(禮義))라 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을 인의(仁義), 국가호국에 몸 바침을 충성, 약속을 지키는 것을 신의(信義)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의라 말하지도 말고, 인의라 말하지도 말며, 충성이나 신의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행하여야 할 본법인데 뭐 특별한 것이라고 구분 지어야 합니까. 상(相)을 가지고 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삐걱대기 마련입니다. 상을 여의고 떠나면 그것이 바로 진실인 것입니다.

상을 여의고 세상에 상도 이름도 알리지 않고 살아가는 그 사람이 군자이며, 덕이 있는 사람이며 지도자입니다. 우리들은 지도자라 함은 당연히 지혜와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조차도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되면 당연히 지혜와 덕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모두가 부처이며, 욕심이 없는 세상은 바로 평등 세상인 것입니다. 평등세상이 도래한다면 지도자란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이 세상은 아직 우리에게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 절집에서나 사바세계에서나 큰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여전히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지도자라고 하면 흔히 한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치란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일까요? 정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의 악한 사람을 버림으로써 한 집이 되고, 하나의 악한 집을 버림으로써 한 고향이 되고, 하나의 악한 고향을 버림으로서 한 국가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정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짐 실은 소를 이끌고 큰물을 건너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를 이끄는 사람이 똑바로 이끌어 가게 되면 무사히 큰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이 일체가 다 제대로 바로잡아 지느니라. 중생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많은 사람 가운데는 반드시 바로 지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릇된 길을 행하지 않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라는 큰 강, 큰물을 건너게 해주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지도자가 되고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에 그들도 사람이자 인간입니다. 사람, 인간답지 않은 사람이 학문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된다면 박사가 천지인 요즘 시대에 지도자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강이다, 계곡이다 생각하세요. 내 속으로 오물이 떠다니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나뭇가지가 떠 내려와 바닥을 휘젓더라도 그냥 유유히 흘러가면 됩니다. 사람들이 강이나 계곡에 가면 좋다며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낍니다. 왜일까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물이 흘러 바윗돌에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굽으면 굽이치면 되고, 좁으면 기다리고 나뉘어 흘러가면 됩니다. 바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바로 지도자인 것입니다.

지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소를 편안히 해주는 사람이 되세요. 그럼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따지지 않아도 저절로 지도자가 됩니다.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할 때 지도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한 국가가 불안한 것은 사람의 몸에 병이 있는 것과도 같음이니, 우리가 이 병든 곳을 잘 진찰하여 급히 병에 맞는 약을 구하여 치료함으로서 살 수가 있는 것과도 같이 백성들의 불평을 알고 구하는 바를 만족하게 함으로써 국가가 안락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비라경(比羅經)》 말씀에서도 그 역할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지도자 이전에 완성되어야 할 사람, 욕심을 버리고 강처럼 계곡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자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두를 들고 끊임없이 수행 정진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든다는 것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내 말과 함께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화두를 들어봐야 헛일입니다.

마음이란 본래 하나이며, 부처와 중생의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했습니다. 곧 마음이 부처라 했습니다. 끝도 한계도 없는 만법의 근원이요, 묘법의 원리입니다. 그 마음을 좇기 위해 화두를 호미 삼아 매일 매일 마음의 밭을 가는 농부로 수행하시면 그것이 바로 상도 여의고 욕심도 벗어버린 강물처럼, 자연인이 되는 길입니다.

끝으로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각 분야에서 자의든 타의든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어떤 일을 할 때 과거를 항상 한 번씩은 돌아봤으면 합니다. 지금의 이 나라는 과거 없이 우뚝 솟은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무수한 선각자와 애국자들이 이 나라를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조금만 더, 조금씩 더 청렴하려 하고, 지혜와 덕목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근본과 본분을 제대로 지켜나간다면 잘 되게 마련입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84호(2003년 6월 14일자)에서 옮겨왔습니다.

2011-01-21 / 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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