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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나 찾는 禪 수행으로 인간성 회복을”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오늘날 신문 구석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건·사고 등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성 상실이 도를 넘고 있다고 느껴져 착잡한 마음 이를 데가 없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어 인간의 존엄성 상실과 가치관 붕괴가 만연하는 시대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시대가 지니고 있는 이면을 한 번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면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며, 독처럼 깊이 뿌리내린 불신풍조 등이 사회 전체 곳곳에 뿌리내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이 중생계는 끊임없는 반목과 갈등, 그리고 대립과 투쟁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만 현대에 와서는 더욱 그 병폐가 심각해져 ‘참나’, ‘진정한 자신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껍데기인 허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허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많아지며 세계인류 전체로 퍼져 나간다면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총체적 위기를 맞이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분명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세계와 인류를 구제하는 길은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부처님 심인법의 정맥인 조사선(祖師禪)은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사유체계의 전환을 앞서 이끌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사상적 보고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은 이원적 대립 개념에 의한 갈등과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화해와 융합의 발원지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심인법은 선수행(禪修行)을 통해 ‘참나’를 바로 보는 것으로,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껍질을 벗고 그 안에 있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수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동안 ‘참나’를 깨닫지 못한다면 참 허무한 인생을 살다 가는 것입니다. 본디 인생에는 무한한 전생(前生)과 무한한 후생(後生)이 있습니다. 8,90세 된 노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벌써 그렇게 됐나’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길게 보여도 인간사 100년은 ‘휙’하니 지나가는 것이고 곧 무한한 후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상을 탈피해 참나를 밝히는 꾸준한 선수행의 연마로 지혜를 얻으면 참된 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나를 찾는 선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수행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것도 이 초고속의 시대에서 말입니다.

먼저 선수행의 바른 길은 눈 밝은 선지식, 즉 명안종사(明眼宗師)를 만나 의지하여 수행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마음의 갈등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은 만 가지 진리법의 주인입니다. 이 참선수행으로 사람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이 마음을 밝혀서 만법(萬法)의 당당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참선이라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수행법을 말합니다. 마음이라는 한 가지 점에서 보자면, 모든 부처님이나 모든 중생이나 조금도 차별이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은 마음자리가 뚜렷이 밝아 있는 분이요, 중생은 번뇌의 구름에 가려져 마음이 어둡고 미혹한 자입니다. 이 마음은 만 중생이 다 갖고 있어 일상생활에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쓰고는 있지만 그 자리를 밝히지 못한 고로, 각자의 업(業)을 쫓아서 천 갈래 만 갈래의 번뇌가 휘몰아쳐 아만심, 교만심, 시기심, 질투심, 탐심, 애정, 공포, 불안 등의 잡된 생각이 마음 가운데 쉴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쓰고 있는 이 마음을 놓고 놓고 또 놓음으로써, 놓음이 없는 단계까지 가는 화두참구를 하는 것이 만법의 주인 되는 길입니다.

이 주인 되는 길의 문턱에 들어섰다면 이제 할 일이라고는 용맹정진하는 일뿐입니다. 다시 이런 질문을 하시겠지요. 이 빠르고 시끄러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과연 그럴 수 있냐고.

선방(禪房)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법문을 듣고 바른 지도를 받아서 걸음걸음 화두를 놓지 않으면, 부엌이나 안방이나 사무실이나 만원버스 등 가는 곳마다 다 일등 선방인 것입니다. 이 일등 선방에서 오직 참구(參究)하는 화두 한 생각, 앉아 있으나 걸어가나 차를 타고가나 공양주를 하나 도량청소를 하나 채소를 가꾸나, 이 몸뚱이는 자기 소임을 하면서 마음은 항시 화두와 씨름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을 하고 애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 망상,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잠자게 됩니다. 간절한 한 생각을 챙기는 거기에 다른 생각이 붙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대중이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즉 앉고 눕고 걷고 일하고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화두를 오장육부에 사무치도록 지어간다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만나 가는 데마다 가득하여 여기서도 부딪치고 저기서도 부딪쳐져서 언젠가는 확연히 열리리니 대신심(大信心)과 분심을 발하기만 하면 됩니다.

옮겨온 곳 ; 만불신문 65호(2002년 9월 21일자)

2010-10-01 / 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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