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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철 스님의 주지학개론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한국불교에서 ‘주지’라는 단어를 연상하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주지 스님들은 대체로 평생의 과제인 수행은 뒷전인 채 무엇보다도 절 살림에 온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자리를 놓고 설왕설래, 옥신각신, 이전투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기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런데 부처님이 주지를 하셨다고? 아니, 하필이면 주지를? 정말 부처님답지 않네. 혹시 잘못된 정보 아닐까? 등등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사실, 부처님 재세 시에는 주지라는 직책이 없었기에 주지직을 놓고 이러니저러니 말 나올 일이 없었다. 수행자들은 한 곳에 사흘 이상 머물러선 안 되었다. 더욱이 지붕 있는 곳은 절대 금물! 이런 사정이었을진대 어찌하여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주지’는 불교를 대표하게 되었을까?

『왜 부처님은 주지를 하셨을까?』(조계종출판사)의 저자 원철 스님은 말한다. 선사도, 강사도, 대중도, 심지어 동냥 얻으러 온 거지조차도 주지 타령이라고. ‘승려의 꽃은 주지’라고 주장하는 모 대덕 스님도 있는 마당에, 우리의 부처님께서는 무슨 마음으로 기원정사에 주석하시어 첫 주지직을 맡으셨는지, 옛 선사들께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지 소임을 어찌 보셨는지 그 깊은 뜻을 한번쯤 새겨 볼 시점이다.

떠돌이 생활에서 승원 거주 생활로 바뀔 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감각 기관을 제어할 수 있는 자에게는 삼림이건 지붕이 있는 집이건 다를 바가 없다. 세계의 어느 곳이든 선정을 위한 장소인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배려와 그 이후 부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주지직을 성실히 임했던 수많은 부처님의 제자들 덕분에 불교 교단은 지금까지 존속될 수 있었다. 훗날, 백운선사는 주지를 이렇게 정의 내렸다. “주지는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날아다니는 것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다.”

날아다니는 것을 잊어버린 주지인지 아닌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저자 원철 스님은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스스로의 근기를 잘 헤아려 부동심의 경지가 나타나기 전에는 함부로 주지 자리를 맡지 말라고!

<조계종출판사 펴냄, 176쪽, 9000원>

기사 출처 ; 조계종출판사 보도자료

2010-07-19 / 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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