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500미터. 히말라야의 고갯길을 넘나들며 펼쳐져 있는 인도 최북단 라다크. 춥고 건조한 고산의 계곡은 사람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혹독하고 극단적인 환경이다. 그러나 그 고립된 땅은 티베트고원으로부터 전해진 티베트불교의 원형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어 ‘작은 티베트’라는 애칭을 불러왔다. 무엇보다도 그 거친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 라다키들의 신심과 환한 미소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경이로운 감동으로 물들인다.
라다크는 인도 최북단,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잠무-카슈미르주’의 동편이다. 10세기 중반, 혼란에 빠진 티베트제국의 일부 티베탄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세운 독립 왕국이었다. 티베탄들이 히말라야 서부에 살던 이란계의 다르드족, 그리고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살던 아리안계의 몬족을 병합해 건설한 라다크왕국은 히말라야산맥의 고갯길에 터를 잡고 일대를 지배했다. 그 옛 영토와 그곳에 형성돼 있는 독특한 문화권 전체를 아울러 오늘날 라다크라 지칭한다.
해발 3500미터에 자리 잡고 있어 ‘하늘 도시’라는 낭만적인 별명을 갖고 있는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는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오가던 카라반들이 모여들던 고산지대 교역로의 주요 거점지였다. 라다크 왕조는 이 교역을 통해 번성을 누리기도 했다. 라다크의 문화나 관습, 종교적 특징은 전통적으로 티베트에 가깝다. 특히 1974년에 이르러서야 처음 외국에 개방된 덕에 라다크의 독특한 전통, 특히 티베트불교의 특징은 정작 티베트보다도 더 잘 보존돼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처음 불교가 전파된 것은 3세기 아쇼카왕에 의해서다. 이후 이곳에 불교가 뿌리내렸다는 사실은 라다크왕조가 세워지기 한참 전인 720년 경 라다크 지역을 순례한 신라 혜초 스님의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에도 등장한다.
“가섭미라국(카슈미르)에서 동북쪽으로 산을 사이에 두고 보름정도 가면 대발률국과 양동국 그리고 사파자국(현재의 레 인근)이 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토번의 관할 아래에 있는 나라다. 옷 입는 복장과 언어 풍속이 모두 천축국과 다르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가죽 옷과 모직 옷, 적삼, 가죽신, 바지 등을 입는다. 땅이 좁고 산천이 매우 험하다. 절도 있고 스님들도 있으며 삼보를 공경하고 신봉한다.…”
우리에게 라다크가 알려진 것은 헬레나 노르베르호지 여사의 저서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오래된 미래’를 통해서다. 호지 여사는 라다크가 세상을 향해 처음 문을 열었던 1975년부터 라다크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그 오래된 세상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기록했다. 호지 여사는 라다크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담보해줄 가치,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수 천년 전부터 알고 실천해 왔으며 이제 우리의 미래는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라다크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들의 생각을 통해 선명하게 전달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 사회의 대안에 대한 열쇠를 제공한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라다크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키웠다.
그러나 라다크의 자연 환경은 이러한 동경을 한 숨에 날려버린다. 춥고 건조한 고산의 계곡, 연중 강수량은 100mm에도 미치지 못하고 겨울철 기운은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육로 이동이 가능한 여름철은 6월부터 9월까지의 4개월뿐이다. 손바닥만한 여름 한철이 지나고 나면 고갯길 땅의 즐비한 고개들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오도 가도 못하는 그냥 고개가 돼 버린다. 라다크 전체 면적 약 97,000㎢ 가운데 사람의 거주가 가능한 지역이 고작 0.5%라는 사실이 이러한 라다크의 환경을 대변해 준다.
하지만 이 같은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꽃을 피웠다. 티베트고원으로부터 전해진 티베트불교를 만개시켜 신심의 열매로 장식했다. 살구나무처럼 강인한 라다키들은 만년설에 둘러싸인 척박한 땅을 일구며 그들의 문화와 삶을 이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이방인들을 향해 순수하고 환한 미소를 보낸다.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소녀, 손때 묻은 염주를 들어보이던 할머니, 굵게 주름 패인 얼굴로 말린 살구 한줌을 나눠주던 스님…. 그들 모두는 낯선 이에게 정겨운 미소를 보내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며 평안을 기원해 주었다. 그들의 미소는 메마른 땅에서 피어난 들꽃처럼 라다크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빈틈없이 짜여있던 여정 속에는 없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어느 길가, 어느 마을, 어느 사원에서 불쑥 이뤄지는 놀라운 경험이자 즐거움이 되었다.
하늘과 땅, 사람과 자연, 그들의 신심과 삶이 하나된 거대한 꽃다발 같은 라다크. 희박한 공기 탓에 더 푸르게 빛나는 하늘과 만년설.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한 산과 그 거친 환경 속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온 사람들과 그들이 지켜온 티베트불교문화가 법보신문 남수연 기자의 따듯한 펜과 겸허한 렌즈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라다크기행은 2011년 2월부터 불교계 전문신문인 법보신문에 책과 동명의 제목으로 총25회에 걸쳐 연재됐다.
여정은 레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리키르, 알치, 라마유르까지 이동하며 산재해 있는 불교사원 답사로 시작하며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라다크의 독특한 자연 환경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 이어 중국과의 접경 지역이자 중앙아시아의 출발점인 동쪽의 누브라계곡으로 이어진다. 지구상 최고(最高)의 자동차도로인 카르둥라를 넘어 누브라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디스킷곰파, 삼텐링곰파와 캬라반들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북쪽으로는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접경지 최북단 다마을까지 이동, 그곳에 남아있는 라다크 지역 소수민족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틱세곰파, 헤미스곰파, 세이팔레스, 스톡팔레스 등 라다크왕국의 중요 불교 및 역사 유적이 남아있는 레 남쪽지역에서는 라다크왕조와 라다크불교의 역사 및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담았다.
종이거울 / 309쪽 / 1만 70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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