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광복 초대 주지를 지냈고, 일제 강압기 양산 신평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대응 스님(속명 양만우, 이명 무홍) 스님이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제91주년 3·1절’을 기념해 스님의 항일독립운동을 인정,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표창은 부산시민회관에서 개최된 부산시 주관 3·1절 기념식에서 스님의 유족인 딸 덕경(80·부산 남구 대연동) 씨에게 전수됐다.
스님은 1897년 7월 양산시 물금 범어 출생으로 1911년 6월 출가해 통도사에 입산해 있으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만해(한용운) 스님의 지시에 따라 오택언(통도사 지방학림과 불교전문강원 동기)으로부터 독립선언문을 전달받고 3월 13일 하북 신평리 장터에서 김상문 박세문 이기주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일로 인한 도피생활 중 1922년 3월 친일승려 용주사 주지 강대련을 몰아내기 위한 시위를 주동하다 5개월 가까운 옥고를 치렀으며, 1928년 5월 근 10년만에 통도사에 귀환해 조선불교승려대회와 조선불교청년회 등에 참여했다. 이후 만해 스님이 주도한 불교 비밀결사체 만당에 참여하다 옥고를 치르면서도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통도사 초대 광복주지로 추대돼 4년여간 통도사를 이끌었다. 이 때 현재의 보광중학교를 설립했다. 60∼66년 동국대학교 감사를 역임했으며, 68년 2월 28일 물금 용화사에서 입적했다.
한편 스님은 신평만세운동 주도 후 도피생활을 하던 중 이름을 양무홍으로 바꿨으며, 통도사에서 대응이라는 법호를 받은 뒤 호적명을 법호를 따라 대응으로 개명해 양만우, 양무홍, 양대응 등 3개의 이름을 가졌다.
스님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에 증빙자료 마련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던 재경 양산향인 임채옥(83·대응 스님 상좌) 씨는 "늦었지만 대응 대종사의 항일독립 공적이 국가로부터 인정돼 다행이다"며 "스님의 독립유공 표창은 불보종찰 통도사와 양산의 명예를 드높이는 매우 영예로운 일이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양산시청’보도자료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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