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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인된 과거와 열린 미래로의 황홀한 시간 여행!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실크로드(Silk Road)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이 처음 사용한 말로, 흔히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ㆍ경제ㆍ문화·종교를 이어준 교통로를 일컫는다. 보다 큰 얼개에서는 중국 장안에서 타클라마칸사막,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고원, 터키 이스탄불을 지나 로마에까지 이르는 길을 지칭한다. 우리나라 실크로드학의 권위자 정수일 선생은 그것의 외연을 신라 경주로까지 확장하기도 한다.

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전한(前漢) 때에 이르러서이다. 한 무제(武帝)는 대완국, 오손국, 대월지국과 같은 서역의 여러 나라와 동맹하여 북방의 흉노를 제압하고자 했다. 그는 장건(張騫)에게 이 임무를 맡겼는데, 실로 십수 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서역 경영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다. 장건이 서역을 개척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는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빈번하게 교류한다. 이때부터 중국의 비단은 본격적으로 로마로까지 팔려 나간다. 또한 시기를 두고 칠기, 도자기 같은 물품과 양잠, 화약기술, 제지기술 등도 건너가는데, 특히 제지기술은 인쇄술 발달과 지식 보급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한 역으로 중국에는 기린, 사자와 같은 진귀한 동물과 호마(胡馬: 말), 호두, 후추 등이 전해지고, 유리 만드는 기술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실크로드는 상업적인 면뿐만 아니라 동서 문화의 교류라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실크로드는 서로 다른 문명간의 충돌이 아니라 교류와 융합을 통해 을 상생해온 길이며, 동서남북을 소통시키고 인류역사의 어제를 오늘로 이어준 길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저자 문윤정이 도서출판 바움에서 실크로드를 세세하게 더듬어간 기행기를 출간했다. 《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그녀는 인도·네팔 순례기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 줌》을 상재(上梓)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실크로드 여행은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이슬라마바드, 탁실라, 카라코람하이웨이, 길기트, 훈자마을, 소스트 등을 경유하여 중국으로 넘어가 다시 탁스쿠르칸, 카슈가르, 우루무치, 타클라마칸사막, 투루판, 돈황, 란주, 천수, 그리고 시안에까지 이른다. 물론 이 책에서 이란고원과 터키 등에 이르는 과정은 제외되었지만 글자 그대로 비단길(오아시스로)의 과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실크로드를 직접 밟아가면서 자신의 감정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고 느끼고 체험한 사실들을 꼼꼼하게 서술한다. 단순히 실크로드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 있는 감정과 상상력을 통해 실크로드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숨겨진 면면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길을 따라 삶을 영위한 인간들의 삶의 세계와 문화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실크로드 여행은 여행자로 하여금 철저히 과거에 머물게 한다. 모래와 바람이 쓸고 간 세월의 나이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노회한 구조물이 들려주는 노래,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즐거움과 회한이 주름마다 새겨져 있는 수천 년 전의 미라, 그리고 여행자 자신이 간직한 추억과 과거를 다 드러내기도 벅찬 그 무엇인가에 대한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이 실크로드 여행은 여행자로 하여금 묵묵히 미래로 걸어가게도 한다. 자신의 삶을 비롯하여 누군가의 삶을 포함한 그 모든 것들이 철저히 과거에 머물러 있을 것 같지만 결국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깨닫게 하는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이 책에서 들여다본 실크로드는 마치 인간의 운명과 너무도 닮아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기쁨과 눈물이 깊게 드리워져 있고, 과거와 현재의 영욕이 교차하고, 그러기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 우리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깨침이 도처에서 드러난다. 솔직히 시중에 실크로드와 관련된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 실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책들이 중국의 시안에서 돈황에 이르는 여행 정보나 단편적인 내용으로 분분하다. 이 책처럼 실크로드에 의지하여 온삶을 살아간 사람들과 문명의 흔적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내용은 드물다. 이 책에 실린 저자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 자료는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주는 한 예다. 실크로드는 살아 숨 쉬는 길이다. 여러 문명을 탄생시키고 키워서 서로 교류하게 한 길이다. 마치 멀면서도 가까이 우리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길이다. 이 책을 통해 실크로드를 가만 들여다보고 음미해보라. 한없이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깊은 동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이 새삼 소중한 이유다.

추천사

실크로드는 고대와 현대, 동과 서, 죽음과 삶을 연결하는 가교이다. 이곳에는 생존을 향한 치열한 투쟁이 배어 있으며, 진리에의 간절한 갈증이 녹아 있다.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늘 바람처럼 길 떠나는 작가 문윤정에게 있어 실크로드는 곧 영혼의 여정이다. 우리는 그녀의 글과 사진을 통해 실크로드의 뜨거운 사막과 하얀 만년설, 천길 낭떠러지의 절벽을 들여다보면서 원초적 향수와 조우하게 된다. - 박경준(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불교학과 교수)

사람들은 문윤정을 말할 때, 무엇인가를 찾아 부단히 길 떠나는 사람 같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미 볼 것을 보았고 찾을 것을 찾았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었다. 다만 한 가슴 풍성하게 품은 것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가 선택한 게 구도자와 같은 길 떠남이었으며, 글과 사진으로 우리에게 보시하는 것이었다. - 김홍희(사진가)

지은이 소개

문윤정은 유서 깊은 도시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반월성, 안압지, 계림, 미추왕릉이 놀이터인 양 열심히 쏘다녔다. 철이 들어서는 원효대사가 지나다녔던 남천의 다리를 오고 가면서 인생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하였다. 지금도 경주의 달빛은 천년 전의 달빛이라 생각한다. 화두처럼 마음에 새겨진 ‘삶’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인도, 네팔, 캄보디아, 파키스탄, 중국, 터키 등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했다.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의문은 풀지 못했지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몇 년 동안 카메라 메고 다니면서 《만불신문》, 《현대불교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했다. 지금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사진집단 일우 회원이다. 그리고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책 읽고 글 쓰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의 아침을 위하여》, 《마음의 눈》,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 줌》, 《잣나무는 언제 부처가 되나》, 《선재야 선재야》, 《마음이 마음에게 묻다》, 《답일소》, 《외로운 존재는 자신을 즐긴다》 등이 있다.

바움 / 383쪽 / 1만 75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

2013-02-21 / 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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