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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성으로 직접 듣는 고은 시의 근원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고은이라는 문화사적 기념비, 그의 내면과 사상의 정수

고은 문학은 여전히 청년이다. 역사의 새벽을 깨우고 달리는 기차처럼 멈춤이 없고 앞으로만 달린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시인이다. 과거는 그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시인이 과거를 들추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나 그조차 순환하는 우주의 시간처럼 과거는 미래로, 미래는 과거로 맞닿아 생명력을 발한다.

이번에 펴내는 1970년대의 일기 《바람의 사상》과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은 바로 과거이되 과거일 수 없는 고은 문학의 미학과 정신의 원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저작들이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산업화와 유신시대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시인의 삶은 그 자체 문학이자 역사다.

일기《바람의 사상》은 이른바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시인이 어떻게 역사의 풍랑에 휩싸이면서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문학가가 되어 가는지 정밀한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하고 있다. 냉정한 사관(史官)의 서술인가 하면, 번뜩이는 시인의 아포리즘은 엄혹한 시대 한가운데서 시인이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오히려 선연하게 증언한다.

김형수와의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은 고은의 정신사적 격변이 어떻게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왔는지를 선언하고 고백한다. 고은 사상의 원류와 성장, 그 도도한 흐름의 현 단계를 알아가게 된다. 전쟁이라는 폐허를 겪으면서 깊은 정신적 방황과 아픔을 통과한 젊은이가 어떻게 문학과 종교에서 그 구원의 빛을 발견하려고 사투했는지, 그러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전후사에 대해 성찰하는지 그의 고양된 시적 육성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두 세기의 달빛》, 시인 고은의 문학적 원형을 부각시킨 ‘정신의 자서전’!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은 고은 시인의 문학적 원형을 최초로 가장 선명하게 부각시킨 ‘정신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대담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형수가 도왔다. 고은의 삶과 문학, 그가 마주한 역사와 문명을 육성으로 심도 있게 들려준다. 모국어를 잃은 한 식민지 소년이 해방을 맞고, 전쟁의 폐허 한 귀퉁이에서 마침내 시의 첫걸음을 숨차게 내딛게 되기까지, ‘고은 시의 원적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대적으로는 1930-50년대 초까지의 삶을 담고 있다. 향후 진행될 대담의 분량을 감안하면 그의 문학 5분의 1에 해당한다.

폐허의 고향을 떠나 치열한 정신의 모험

벽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에게 고향은 농경시대의 유산을 간직한 친화의 공동체, 육친의 세계였다. 그러한 고향은 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면서 “폐허”로 변해갔다. 자신이 기대고 살아갈 고향, 또는 본향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박감은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치열한 정신적 모험을 추동한다. 그에게 젊은 날의 현실 혐오, 고향 상실은 동일 궤적에 있었다. 그러나 고은은 이 과정을 통해 실종된 고향이 도리어 미래를 보여주는 지침인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사라진 것들을 다시 길어 올리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고은의 기억 속에 담겨져 있는 시대상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초월적 실존주의자로서의 재발견

김형수 시인은, 이 대담을 통해 고은 초기 작품세계에 대한 기존의 통념인 ‘관념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초월적 실존주의’로서 고은을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은 시인 자신도 “1950년대를 살아남은 회색의 청춘, 결핍의 청춘에게 허무란 실존적인 명예”였다고 회고한다. 이에 대해 대담자 김형수는 “뼈아프고 그토록 부조리한 세계의 실존을 견디는 형식이 폐허에 대한 지향이고 허무에 대한 집착이며 영점으로의 귀환이었던 것을, 또한 그 무거운 과거에 대한 전면적 항거와 반전의 혁명이 바로 ‘부활’이었다”라고 평한다.

《두 세기의 달빛》의 또 하나의 경이로운 점은 시인 고은의 기억력이 가진 구체성이다. 그것은 일상을 표현할 때나 사상을 정리할 때나 그 어디에서나 빛을 낸다. 자신의 가족사를 말할 때도 그렇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대에 대한 회고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그의 독서가 얼마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는지에 대해서도 경탄하게 한다.

시대의 벽에 맞서는 시인의 운명

시인이 시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발언하고 사상의 중심을 세우기도 하며 미래를 전망하면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다채로운 언어로 말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은에게 이르면 우리는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바람의 사상》과 《두 세기의 달빛》에서 듣게 되는 고은의 육성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놀랍다. 시대가 앓고 있는 무거운 통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고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한계를 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신체제가 포악스러운 힘을 발휘하고 있던 1975년 3월 10일 그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대는 넘을 수 없는 암벽이다.
넘을 수 없는 것을 넘어야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사명이다.”

오늘도 시인 고은의 토로는 적중하고 있다.

지은이 소개

고은은 1958년 처녀시 「폐결핵」 발표 이래 시ㆍ소설ㆍ평론ㆍ에세이 등 1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중 시집은 서사시 《백두산》 7권, 전작시 《만인보》 30권을 비롯해 모두 70권이며, 《고은시전집》 《고은전집》을 출간했다. 세계 25개 국어로 시와 소설이 번역 출판되었고, 이 가운데 《만인보》는 스웨덴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선정되어 중고교 외국문학 교재로 채택되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예총 초대회장 등을 지내고, 미국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 초빙교수, 버클리대 동양학부 초빙교수(시론 강의), 서울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 석좌교수,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명예위원회 위원, 한겨레사전 남북한 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며 국내외 시단에서 창작활동 중이다. 국내외 문학상과 훈장을 다수 수상했다.

김형수는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에 소설로 등단했고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대한 추억》, 장편소설 《조드 1, 2》 《나의 트로트 시대》,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외 다수와 《문익환 평전》 등을 펴냈다. 오늘도 시인 고은의 토로는 적중하고 있다.

한길사 / 669쪽 / 규격외 판형 / 2만 30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

2013-02-01 / 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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