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증명법사가 필요하다는 수계의식에 우리는 11분의 스님을 모시고 12계단이 설치된 법당에서 상좌부 불교의 의식절차에 의해서 삭발하고 가사를 수지한 후 의복은 런닝 팬티도 없이 보관 시키고 나서 우냐니까(U. NȳA NI KA)라는 새로운 법명(法名)을 수지한 채 지정된 외국인 수행자 방으로 입실(入室)했다. 그때부터 일과표에 의한 수행의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불과 1시간 남짓에 빚어진 변화의 세계다.
2. 입방자(入房者)
14호실까지 있는 우리건물에는 오늘 계를 받은 한국인 비쿠 3명 외에 미리와 계시는 우리불교계에서 누구라 하면 아실 스님 2분과 yogi(수행자) 1명있었고 일본인, 러시아인, yogi와 일본승려, 태국 승려 분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수행하고 계시고, 옆 건물 그 옆 건물에도 미얀마 승려와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비구들이 계셨다.
수행자들이 머무는 방 내부 모습
우리는 각기 방을 배정받아 잠을 풀고 이 인종 전시장 같은 곳에 입주(入住)하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외국인은 같이 인터뷰를 받고 담마토크(Dhamma Talk·법담)를 마친 분은 보통 30∼40명으로 한국, 일본, 태국, 캐나다, 프랑스, 이태리, 독일, 아일랜드, 캄보디아, 러시아인 등이다. 그야말로 각 나라 사람이 오직 부처님법의 깃발아래 같은 마음으로 모였으니 이질감은 전연 없다 서로가 만나면 따스한 눈길의 인사 외에는 대화도 거의 없다. 들어올 때는 며칠을 있건 몇 주, 몇 달을 있건 비용은 누구나 미국 돈 50달러이다. 이것도 4, 5년 전부터 이 제도가 생겼단다. 전에는 이것도 없이 무료 숙식 이였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하도 많이 찾아와 수행은 않고 며칠 묶다 도망(?)치고 하는 통에 생겨난 제도란다. 1급 호텔의 1박 요금도 되지 않는다.
이 방에 들어오는 자 세간(世間)의 지해(知解-알음알이)를 버려야한다. 일과표대로 수행하고 철저한 오후불식, 그러니까 05:30분경 깜깜한 새벽에 죽 한 사발이나 이곳식의 국수말이로 요기하고 10시에 한 끼의 공양을 한다. 다음날 아침 죽 공양까진 19시간에서 19시간 30분 동안을 물외에 씹어 먹는 음식은 먹을 수 없고 돈도 시자에게 모두 맡겨 아예 돈을 만질 수 없도록 한다. 원내에 매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문 앞에 구멍가게들이 즐비하나 나가고 싶지도 않거니와 먹을 음식도 없다. 위생상, 그리고 입맛으로도 먹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이와 같이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의 수행법과 율장이 살아 숨 쉬는 곳 그 많은 인원을 나이 드신 원주스님 한분이서 뒷바라지하고 계신다.
3. 수행일과와 생활
곳곳에 시간표가 붙어있다. 그러나 간섭이나 통제는 전연 없다. 철저한 자율이다. 그러면서 철저한 통제가 율장 속에 녹아있는 곳 기껏 부탁하신 말씀이 오후6시 넘어서는 외출을 삼가 달라신다. 어두워지면 혹 생길 수 있는 불상사 때문이고 21시가 넘으면 정문을 걸어 잠그고 경비원도 없기 때문이란다.
이곳의 일과는 03시 기상 세면, 좌선, 경행 05시20분 새벽 죽 공양, 이후 좌선 경행 09시 목욕 세탁 등 개인정계, 10시 공양 이후 똑 같은 좌선경행, 21시에는 각자 침실에서 명상(좌선)과 경행을 하다가, 11:00시에 소등(消燈)하고 잠자리에서 와선(臥禪)까지 하게 된다. 나는 젊었을 적 월남참전 23개월의 경력이 있어 33~36℃의 더위가 생소하지 않고 에어컨 없이 사는 버릇 때문에 이곳의 땀에 절은 열대야현상이 새롭지 않다. 새벽녘 2시간 정도일까, 배꼽엔 수건 정도는 덮어야할 만큼 시원하다. 그리고 오후불식의 문제는 한국의 나의 일상이 2식 아니면 1식이였으니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더구나 한 끼 공양은 자율급식에 2-3까지 육류와 생선 각종 기름과 향료로 튀긴 야채 종류와 시금텁텁한 국이 나오고 계속 리필해 주고 밥은 양껏 먹을 수 있다. 후식으로는 바나나, 오이가 주(主)이고 가끔, 수박, 파파야, 망고와 아이스크림이 주 4-5회 나온다. 이곳에서는 오신채 뭐니 하는 것은 없다. 300여명이 식사할 수 있는 우리식당에는 입장하여 불당에 여기 식으로 고두 3배하고 식사하면 된다. 끝나는 대로 또 한 번 고두 3배를 하고 나오면 된다. 탁발은 지원자와 내정자에 한해 70∼80명이 새벽 6시 30분에 선원을 출발하여 오전 9시경에 돌아온다.
수행처의 모습.
처음 며칠은 20시간 굶을 일을 생각해서 조금 과식을 해 수행에 장애가 오기도 했다. 그때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실소(失策)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30대의 yogi들은 그야말로 1주일 정도는 힘든가 보다. 나에게 역시 어려웠던 것은 가사 속으로 ‘또르르’ 구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흐르는 땀방울, 그것 땜에 짓무른 피부병 등이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니 모두들 트러블이 없이 잘도 적응해 나간다. 까마귀(여기서 까마귀는 길조다. 한국에서 까치처럼) 등 무수한 새들의 합주곡이 여간 생경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화된 환경 등이 새롭다. 몸 만들기 10일이 지나자 30년을 앓아온 당뇨병의 혈당도 다소조절이 되었고 여행기간의 과로도 풀려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아가며 집중력과 정진력이 향상되며 고요와 알아차림을 순일(純一)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그저 명상(좌선)과 경행(행선)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새벽 3시부터 밤11시 까지 한번에 2-3시간 앉는 때를 제외하고 평균 한 시간씩 좌선한다고 치면 5~7회의 좌선경행이 계속 이어진다. 수계할 때 내리신 가사 3벌과 발우 1구, 앞에서 설명했듯이 잘 먹여주고 잠은 각자의 방(房)은 6∼8평 규모로 앵글조립 1인용 침대(모기장 설치된 것), 책걸상, 나무싱크대, 세면대, 좌변기, 비데와 샤워기 등이 비치되어 있다. 이렇게 잘 재워주며 수행을 가르쳐주고 공부를 시키며 생활하게 하는 나라가 세상에 미얀마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계속>
<출처 : 미디어 붓다 06월 16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