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도림 법전 대종사 하안거 해제 법어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까닭은
남양 혜충 국사가 시자인 응진 탐원(應眞耽源) 스님을 불렀습니다. “시자야!” 하고 세 번씩 시자를 불렀습니다. 시자는 당연히 세 번 모두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혜충 국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등지고 있구나.”
국사가 세 차례 모두 불렀고 시자는 세 차례 모두 대답했다고 한 것은 시자가 방에서 대답만 하고 나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사가 부르면 시자는 마땅히 달려와서 문 앞에 섰고, 국사가 고개를 끄덕이면 시자는 물러갔습니다. 국사가 다시 부르면 시자가 오고, 국사가 고개를 끄덕이면 다시 돌아가기를 이렇게 세 번 거듭한 것입니다 .
그런데 한 번만 부르고 한 번만 대꾸해도 좋을 것인데 세 번 부르고 세 번 대꾸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 번 모두 같은 소리이겠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세 번은 각기 다른 소리인 까닭입니다. 국사가 세 번 부른 뜻은 참으로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감히 더듬어서는 그 뜻을 찾을 길이 없는 도리입니다.
진리의 문호를 지키고자 한다면 맨발로 칼산지옥을 달려야 하는 법입니다. 모든 속박과 의지처를 벗어던지고 맨발과 맨몸만 남겨서 분별과 통하지 않는 이 공안과 대결해야만 합니다. 세 번 불렀는데 세 번 모두 못 알아듣는다면 알기는 알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사가 세 번 시자를 불렀는데 어디가 잘못된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자가 세 번 대꾸했는데 어디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국사와 시자가 모두 잘못된 것입니까?
하안거 해제 대중은 누가 잘못되었는가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놓아두고 살펴보기만 하십시오. 대신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제멋대로 답을 다투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리고 모든 답에 아랑곳 하지 말고 해제 후 길거리에서도 그저 ‘국사가 세 번 시자를 부른 뜻’을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락유수오고여(花落流水吾辜汝)요 명월청풍여부오(明月淸風汝負吾)로다
꽃 피고 물 흐르니 내가 그대를 저버리고 달 밝고 물 맑으니 그대가 나를 저버린다.
2554(2010)년 하안거 해제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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