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김승희 『감로탱』
국내 최초로 감로탱 화집을 발간한 이후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00부 한정판으로 발간했던 1995년의 《감로탱》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금세 절판되었다. 그 후 서양의 종교 문화에 자주 노출된 21세기 한반도의 정세에도 불구하고 불화에 관한 남다른 애착이 있는 일부 독자들의 《감로탱》 재판 문의는 꾸준히 이어졌고, 때마침 10년이 넘는 공백 동안 이곳저곳에 묻혀 있던 감로탱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 증보판에는 16세기에 그려진 세이쿄지 소장 감로탱을 비롯해 코묘지 소장 감로탱(16세기 말), 경북대박물관 감로탱(17세기), 우학문화재단 감로탱(17세기), 영취산 흥국사 감로탱(18세기), 안국암 감로탱(18세기), 성주사 감로탱(18세기), 표충사 감로탱(18세기), 동화사 감로탱(19세기) 등 총 아홉 점이 수록되었다. 또한 복원된 20세기의 흥천사 감로탱도 싣고 있어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민중들의 삶 속에 스며든 토착 불교미술의 질박한 매력과 시대상에 따른 변천을 한 권의 화집을 통해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이 《감로탱》의 가장 큰 장점이다.
고유한 한국의 불화 감로탱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짧고도 긴 삶의 여정을 떠난다. 불가에서는 그 삶이 다음 세계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이렇듯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생 대장정의 서술적 묘사가 바로 ‘감로탱’이다.
감로탱은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그림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독특한 감로탱은 조선시대 때 수륙재나 49재를 위해 중생 구제의 과정을 그린 의식용 그림이다.
감로탱은 대체로 ‘상단-중단-하단’이라는 삼단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몇 점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구성을 유지해 왔다. 이 삼단 구성은 시간과 공간을 서사적으로 한 화폭에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전생(하단)과 현재(중단) 그리고 미래(상단)가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감로탱은 민속학의 보고이자 금어의 실험 정신과 상상력이 아로새겨진 한국 불교 예술의 꽃이다.
감로탱의 새 지평을 연 흥천사 감로탱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의 팽창에 따른 위기의식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이러한 질곡의 시대에 궁중의 원찰이기도 했던 서울 삼각산 흥천사에서는 1939년 11월 6일 봉화불사를 거행하면서 점안 봉안식을 열었다. 그때 봉안된 감로탱은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도상에 반영함을 물론, 기존 감로탱에서 사용되었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새롭게 창출한 뛰어난 작품이다.
그동안의 감로탱은 구름이나 산등성이, 수목 등의 지물을 이용해 장면들을 분할했으나, 흥천사 감로탱은 먹선으로 작은 사각의 화면을 만들었다. 또한 분할된 개별 장면마다 완결된 이야기와 구도를 가졌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체적인 장면을 살펴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일본과 관련된 장면에 종이를 덧대 흰 칠을 해 가려놓았기 때문이다.
최근 덮여 있던 부위가 제거되면서 흥천사 감로탱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공개된 여섯 장면에는 일본군과의 전쟁장면, 1925년 남산에 건립되어 조선신궁으로 개칭된 조선신사와 한국 침략을 목적으로 서울에 두었던 통감부의 모습 등이 들어가 있어 실로 충격적이다.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인 흥천사 감로탱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읽고,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결기 어린 민족성을 엿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종교회화의 희화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지상에서 자기 생명을 보존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감로탱에 등장하는 천도재의 천도 대상은 넓은 의미에서 그 투쟁의 희생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에게 대들다가 매를 맞는 노비, 전쟁으로 비참하게 죽는 사람, 한 많은 세상 스스로 목 졸라 자살하는 사람,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사람 등 감로탱 안에는 여러 인물의 죽음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그로테스크한 아귀들과 갖가지 괴로움이 묘사된 지옥이 담겨 있다. 고통스럽고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지옥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대상을 익살스럽게 그려낸 우리 조상의 뛰어난 골계미가 돋보인다.
<도서출판 예경 펴냄, 492쪽, 35만원>
문의 ; 02)396-3040 기사 출처 ; 도서출판 예경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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