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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덕 수승해도 기회 되면 보시해야”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제원 스님(길음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참 보시행’

보시라는 것은 우리가 수행을 닦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항목입니다. 보살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도 보시부터 시작합니다. 보시행은 자기의 아만과 자기를 내세우는 아상을 놓아버릴 수 있을 때 실천할 수 있습니다. 과거세에 부처님께서도 보시행을 통해서 수행의 본체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는 육보시까지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례를 들어보면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 아니룻다(아나율)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수행을 잘못해 시각장애인이 돼 버렸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도를 깨쳐서 혜안을 얻어 천안 제일로 불렸습니다.

장애인이 된 아니룻다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을 느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옷이 해어지면 기워 입어야 했는데, 바늘귀에 실을 끼울 수 없어 큰 불편을 느꼈습니다. 아니룻다는 혼자 수행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바늘귀를 끼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루는 인기척이 나서 “지나가는 나그네여, 날 위해서 바늘귀를 좀 끼워 주시겠습니까?” 하니 지나가던 나그네는 바늘귀를 끼워주면서 옷도 꿰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룻다는 이 나그네에게서 특별한 느낌을 받아 “혹시 내 앞에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어 다시 “혹시 세존이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그제야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니룻다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고,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시면서 복과 지혜가 출중하신 분인데 왜 보시를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이미 복과 지혜가 이 세상을 덮을 만큼 수승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보시하는 일, 복 짓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도 보시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듯이 우리 중생들이 보시하는 마음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보시행을 하면 상대가 보시를 받음으로써 기뻐하기 때문에 그 기쁨이 나한테 반사되어 옵니다. 그래서 보시는 어떠한 공덕보다 수승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보시의 근본은 자비(慈悲)라고 얘기합니다. 자비라는 것은 한 마디의 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慈)’는 남을 나처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고, ‘비(悲)’는 남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알아서 함께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비로소 ‘자비’가 됩니다. 남을 나와 같이 생각할 때 비로소 보시를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부와 권력의 기준에 따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어떻게 보시를 해야 할까요. 우선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보시의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래 기업은 기업으로서 존재해야 하고, 오너는 최대 주주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너가 노력해서 된 기업에게는 그 재산을 어떻게 쓰든 그 사람들한테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자들도 돕고 싶어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이 사회를 내가 희생해서 건질 수 있다면 자기 재산 모두를 낼 용의가 있는 재벌들도 있습니다.

실례로 얼마 전 팔순의 실향민 강태원 씨도 해방 후 단신으로 월남해 포목상과 운수사업을 하면서 평생 동안 모은 전 재산 270억여 원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또 남부지방에 큰 수해가 발생했을 때는 삼성그룹에서 거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자기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는 분들로 인해 이제야 기부문화가 싹트고 있습니다만,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습니다. 서구의 헌금문화는 우리의 보시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도네이션(Donation, 헌금)을 많이 하는데, 많은 부자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습니다. 자식에게는 집과 직장만 마련해 주고,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합니다. 특별한 예로 100년 전에 ‘강철왕’이라고 불렸던 카네기를 들 수 있습니다.

카네기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헌금문화의 정점을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카네기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에서부터 모든 분야를 관할해 미국사회 전반에 베풀었습니다. 미국 인구의 1/3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혜택을 받았을 정도로 카네기재단은 미국사회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 헨리포드, 록펠러, 터너, 빌게이츠 등도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기업에서는 1%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 중 10%는 줄 수 없지만 1% 정도는 누구한테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운동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물질을 줄 수 없다면 말로도 줄 수 있습니다. 좋은 말, 격려의 말, 덕담 등 희망을 주는 말 역시 보시입니다. 또 몸으로 하는 보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무거운 물건을 놓고 쩔쩔매고 있는데 옆에서 “제가 조금 도와 드릴까요?”하고 같이 손을 마주 잡았을 때 그 힘은 반이 아니라 배 이상이 됩니다. 또한 수승하고 깨끗한 청정심이 전달되기에 그 무게는 1/10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몸으로 하는 보시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떤 것으로든 보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보시를 행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몸 하나, 내 생각 하나, 내 말 하나, 또 약간의 돈을 보시하면 됩니다. 보시라는 것이 어렵고, 나중에 잘 살 때 하겠다는 개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보시는 돈이 많은 사람이 행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그러한 관념조차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법문 옮겨온 곳 ; 만불신문 64호(2002년 9월 7일자)

2010-09-15 / 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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