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스님(도선사 회주)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가꾼 결실을 가을에 맺습니다. 수확을 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풍요로운 가을을 맞을테니 뿌듯할 것이며 또한 넉넉한 겨울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이 덥다고 일부러 땀 흘리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좋은 씨를 심고 젊을 때 열심히 일을 하면 풍요로운 가을과 같은 노후를 맞을 것입니다. 농사는 한해 망치면 다음 해에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사람의 인생은 그렇지가 않아서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합니다. 인생은 한번 잘못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큰 차이지요.
금생엔 전생의 업보를 분별하고 그 업보들을 닦아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선업(善業)을 짓는 것은 전생의 업을 씻는 것과 동시에 내생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지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올 때 많은 전생의 업을 지고 오고, 갈 때도 많은 업보를 지고 간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오는지 또 무엇을 가지고 가는지 알도록 정신 차려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무거운 업보를 지게 되고 후회할 날이 오지요. 내일을 위해 자신의 삶에 용맹정진하는 것이 업을 씻어내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사람마다 얼굴 생김이 다르듯 생각과 삶이 다르지요. 자신의 능력에 맞게 열심히 살면서 선업을 쌓으면 됩니다. 한 가지보다는 두 가지, 두 가지 보다는 세 가지가 더 좋을 것입니다. 특히 십선업(十善業)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업은 우리들의 행위에 따라 열 가지 착한 십선업과 열 가지 나쁜 십불선업(十不善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십선업은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기어(不綺語), 불악구(不惡口), 불양설(不兩舌), 불탐욕(不貪慾), 부진에(不瞋圭), 불사견(不邪見)입니다. 십불선업은 그 반대지요. 십선을 행하는 것을 계율로 삼은 것을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 합니다. 선업은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미혹한 자는 입으로만 말하고 지혜로운 자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행합니다. 지혜로운 자처럼 선업을 쌓는 동안 겪는 괴로운 일들을 참고 견디면 큰 수확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욕(忍辱)바라밀을 같이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중생은 한 우주,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원수는 갚지 말고 은혜는 갚아야 하지요. 개인이 나아가는 것만큼 전 우주도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각자가 선업을 쌓아 큰 수확물을 얻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전 우주를 위한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확물들을 나누는 것, 곧 우주에 회향하는 것은 모두에게 기쁨이 되지요.
얻은 후에는 나누어야 합니다.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형편대로 주면 되지요. 주고받는 마음이 청정하다면 아주 작은 물건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속에 보시의 참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 생활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자비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지요. 대가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만큼 뜻 깊은 일은 없습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사용하기 전에 베풀기 위해 남겨둘 수 있는 여유도 좋지만 쉬운 것은 아니지요.
올해는 수해 때문에 많은 국토와 사람들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1년 농사를 제대로 수확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수해를 면한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누구나 그런 고통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듯이 수해 입은 사람들의 괴로움을 나의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그분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괴로움을 극복해 더 단단해진 정신력을 가질 수 있도록 모두 같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 원하는 만큼 수확을 못했으면 내년에 새로운 수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내년 농사에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어려운 것을 이겨내고 힘내야하지요.
인생도 같습니다. 지나간 것은 전생이고 전생에 지은 잘못을 업으로 금생에 받으면 그것을 극복해야지요. 내생에 대한 희망으로 충분히 극복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파괴는 건설을 의미합니다. 올해의 수해가 단순한 일회성 괴로움이 아니라 다 함께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고통 받은 사람은 그것을 이겨내려는 모습에서, 피해가 없었던 사람은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에서 지난 업을 갚는 것입니다. 빚을 갚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실천적 방법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지금 이 순간이 있기 때문에 내일이 있습니다. 지금이 내일의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매초, 매분이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순간 순간을 소중하고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하루, 한 달, 1년이 행복합니다. 극락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바로 지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실수와 잘못을 반성하고 내일을 생각하는 것. 자기를 자각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복된 삶이고 수행입니다.
옮겨온 곳 ; 만불신문 66호(2002년 10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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