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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초 스님과 8세기 인도를 만나다”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지안 스님 옮김 『왕오천축국전 - 혜초 천축 다섯 나라를 순례하다』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안내하는 혜초 스님의 구법 여행기

1908년 어느 날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는 중국 감숙성 돈황에 있는 천불동 제17 석굴을 탐사하던 중 동굴 천장 구석진 곳에서 낡고 오래된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발견했다. 무려 1,200년 동안 깊은 어둠 속에서 숨 죽이고 있던 보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던 순간이었다.

가로 42cm, 세로 28.5cm의 황마지 9장을 이어붙인 두루마리에는 총 227행 5,893자의 한문이 손으로 적혀 있었다. 두루마리를 발견한 펠리오는 두루마리의 내용이 8세기 당나라 승려 혜림이 지은 불교어휘사전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제100권에 실려 있는  『혜초왕오천축국전』 편에 주석된 어휘와 일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원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의 3권이었기 때문에  『일체경음의』  『혜초왕오천축국전』도 상·중·하의 권이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 설명된 85개의 단어가 필사본에 모두 나타나지는 않고 17개만 나타난다. 이를 통해서 원본의 앞뒤 많은 부분이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런 점에서 필사 두루마리는 3권으로 된 원본의 전체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오천축국전』은 1,200년 전 ‘100명이 떠나도 돌아오는 이는 하나도 없다.’는 멀고도 험난한 천축으로 구법 여행을 떠났던 신라의 혜초 스님이 남긴 여행기록이다. 즉,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 등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하면서 당시의 사회상, 정치, 종교, 경제, 풍습 등 문화에 관한 사실적인 기술을 담은 견문록이다.

순례지의 경험과 느낌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술…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

최초의 인도 견문록은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 법현(法顯)이 쓴  『불국기(佛國記)』로 399년부터 414년까지 약 15년 동안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그 외에, 현장(玄?)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629년에서 645년까지 약 15년 동안의 순례를 현장의 제가 변기(辨機)가 편찬하였다. 또, 의정(義淨)의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은 671년부터 694년까지 23년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여행기들에 비하면, 혜초의 여행 기간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약 4년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추정되는 기록의 양도 가장 적고, 견문(見聞)의 내용도 상당히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언어적 표현이나 문학적 완성도 그리고 정밀성 등에 있어서 법현의  『불국기』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미치지 못한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왕오천축국전』은 여행을 마치고 나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후 사정을 자세히 기술한 것이 아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때그때 보고 들은 것은 간명하게 기술한 것으로 그때의 느낌과 경험을 직접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의  『동유기』, 아랍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손꼽히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순례자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라니

4년이라는 기간은 다른 여행기에 매우 짧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혜초가 순례의 길에 올랐던 시기가 8세기였음을 고려해 보면, 4년 동안 직접 걸어서 순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분명 고행 중의 고행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다운 법(法)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멀고 험난한 천축으로 구도의 순례의 길을 떠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가장 오래된 여행기라는 점에서 갖는 문헌적 가치 이전에 한 구법자의 오롯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다라니(陀羅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교학 연구와 수행 정진을 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계신 지안(志安) 스님의 정갈하고 담백한 우리말 번역으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다시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서 소개하고 있다. 오랜 세월 구도(求道)의 길을 걷고 있는 출가 수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왕오천축국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참된 진리를 찾는 고독한 수행자의 여정(旅程)을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이 땅의 오롯한 수행자의 손으로 우리 앞에 다시 불러내었다.

 『불광출판사, 212쪽, 1만 3800원』

기사 출처 ; 불광출판사 뉴스레터

2010-10-21 / 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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