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 스님(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심외무물(心外無物)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들은 항상 이 두 단어를 가슴에 새겨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이 단어를 명심하지 않으면 항상 남에게 속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자기 자신이 주인공으로 사는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불운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일체유심조’라.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선 ‘일체’라고 하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만물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비롯해 동물, 식물, 심지어는 개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심조’라는 말은 일체만물을 전부다 내 마음에서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이 나무에 들어가면 나무가 되고, 산에 들어가면 산이 되고, 불에 들어가면 불이 되듯 전부가 마음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과 행동하는 몸이 다르면 문제가 됩니다. 이 마음은 본래 한 덩어리인데 둘로 나누면 두 개가 갈라져 세 개가 되고, 이것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누어져 자기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산이 곧 물이요, 물이 곧 산이 됩니다.
‘심외무물’이라. 마음밖에 물건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이 광활한 우주 속에 ‘나’라는 가장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도를 깨친 후에야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호랑이 새끼 한 마리를 주워 길러서 큰 호랑이로 키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호랑이를 보고 겁을 집어 먹고서는 호랑이가 무섭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가 키워놓고 자기가 무섭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으로 만든 형상을 자기가 통제하지 못한다면 자기의 주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 밖에 어떠한 물건도 없기 때문에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마음에 대해 아주 잘 비유해 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오온실종생(五蘊悉從生) 무법이부조(無法而不造)
마음이라는 것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려내는데, 오온이 마음 따라 생겨 무슨 법이나 짓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옛날 중국 선종의 2조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를 찾아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가르침을 얻고자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혜가 스님은 달마대사에게 “화상께서는 저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마음을 가져 오너라. 편안케 해 주리라.”고 대답했습니다.
혜가 스님이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달마대사는“찾을 수 있으면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겠느냐?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었다. 그대가 지금 편안한 그 마음을 보았는가?”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달마대사는 실제로 불안이 없는 혜가 스님의 마음 그 자체를 모두 다 들어내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동·식물을 막론하고 모두 우리의 가족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나와 남을 구별하는 분별심을 내지 말고 모두 다 우리 부모·형제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따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관시변법계(寬時偏法界) 착야불용침(窄也不用鍼)
이 말은 마음이 너그러울 땐 온 법계를 덮고도 남지만, 좁아지면 바늘 끝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좁아진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지극히 넓은 대인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지극히 좁은 소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불자님들은 마음을 좁게 가지는 소인이 되지 마시고, 마음이 넓은 대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인들의 말씀에 “다만 범부의 정을 버릴지언정 성인이나 범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망상 집착만 버리면 그대로 부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 가운데 가장 떼어버리기 어려운 집착이 ‘나’라는 집착입니다. ‘나’라는 집착만 끊으면 ‘남’이라는 집착도 동시에 끊어지는데, ‘나’라는 집착이 못 떨어져서 파생된 온갖 집착이 다 벌어져 나옵니다.
우리는 우주만물은 네 가지 요소, 즉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가지고 ‘나’라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4대안에 육근과 육경이 상대한 속에 있어서 무명이 쌓여 있는 그것을 가지고 마음이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하나가 껍데기입니다. 이 껍데기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우리 마음의 실체를 잘 파악하고 깨우쳐야 합니다. 깨우치게 되면 부처님이 따로 있고, 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불자님들은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언제든지 부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부처님 됩시다.
출처 ; 만불신문 69호(2002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