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스님(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자연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우리의 ‘생명’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고, 신비하고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존중돼야 합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세계적으로는 인간복제, 국내적으로는 출산저조로 인한 인구 감소 등의 문제가 있는데, 이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최근 클로네이드사의 복제아기 출산으로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앞서서는 복제 양 둘리도 있었지만 사람을 복제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욱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은 육도윤회를 설하는 불교의 윤회사상과는 상치된다고 하겠습니다. 또 사람을 기계부품처럼 마구 찍어낸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우리사회에 만연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인간복제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인간복제 기술이 난치병이나 불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자료로 쓰여진다면 다행이지만, 악용될 경우는 우리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인간복제 기술이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분야로 진보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불교인들도 인간복제기술이 상술로 이용되거나, 또 다른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종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악용을 막아야 합니다.
인간복제 문제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출산 저조로 인해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방송을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집안에서 자식을 7~8명씩 낳았으나, 70년대 새마을 운동 이후 산아제한을 계속해 오면서 요즘은 한 두 명의 자녀만 두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러 아기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쾌락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최근 국가에서는 육아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출산 장려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출산율이 계속 낮아질 경우 인구감소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고, 인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자식은 꼭 내 뱃속에서 나와야한다는 유교적인 관념도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내 자식을 통해 내 가문이 융창해지고 인류가 보존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입양한 아이라도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가에서 자식을 낳는 사람에게 육아비나 교육비 등을 지원해 주는 것은 한시적인 방법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인성교육과 자연교육, 특히 불교교육을 제대로 시켜 국민 스스로가 생명을 존중하는 인성을 쌓도록 해야 합니다. 불교인성교육이 잘 된다면 자식이 많지 않아야 편하고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중생들은 ‘고생이 곧 낙이요, 낙이 곧 고생’이라는 사바세계의 삶, 그 자체를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을 그대로 두고 살아가는 인간은 미망(迷妄)속에 살아가는 중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심기일전하여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바꿔 나간다면 이는 곧 깨달음의 삶이요, 보살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보살심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맑고 밝고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선진국에서는 입양할 때 고아원에서 제일 못난 아이나 장애아를 양자로 데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잘난 아이를 입양하지만 그들은 가장 못난 아이나 지체가 부자유한 아이를 데려가 키우는데, 어찌하면 저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불자들도 내 자식이 아니라도 이웃에 있는 어려운 어린이들을 내가 살펴줘야겠다는 마음을 발현해서 참 보살심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옛부터 자기가 먹고 살 복은 타고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과학문명이 발전하지 않아도 이 대자연 속에는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말입니다. 흉년이 들어 벼농사가 잘 안 되면 도토리, 머루, 다래 등 열매가 많이 열려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이어가도록 돕는데 이는 생명을 살리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입니다.
또 불교의 오계 중에는 불살생을 하나의 덕목으로 정해놓고 살생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파계의 현상으로 인식해 부처님께서 계율로 엄하게 경책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불살생계는 바로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보살계목에는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지니지 말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처럼 부분적인 면만을 본다면 군대에는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가의 전통을 보면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라의 화랑오계(세속오계) 중 다섯째인 ‘살생유택’과 화랑도들의 역할을 보면 화랑오계는 신라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계율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서산·사명 대사를 비롯한 승병들은 누구보다 생명 보호에 앞장서야 했던 스님이었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전쟁에 나서서 살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원광스님이나 서산 대사, 사명 대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선 것은 보다 더 큰 살생이나 민족의 슬픔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내 국가 내 민족을 지키는 것은 내 가정과 내 불교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사형제도가 있지요. 이것 또한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폐지돼야 합니다. 부처님은 친부모를 해친 사람을 제외하곤 어떠한 살인자라도 출가자가 되려고 한다면 다 받아주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이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가 잘 된 국가일수록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무기수로 살아가도록 합니다. 국가가 재정적으로 감당하는 비용이 늘어나고, 정신적으로 인내하는 기간이 많아지더라도 생명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무기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질서유지를 위한다는 명분은 잠시 접어두고 사형집행을 미루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참회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사형제를 법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나의 생명이 소중하듯 다른 생명체도 소중하다는 것을 진실로 깨달을 때, 참 불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만불신문 74호(2003년 1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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