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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눈을 떠야 인류 미래 밝아져”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서암 스님(전 봉암사 조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꿈을 깨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꿈 깨는 법’을 가르쳤다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꿈을 깨라는 것인가? 부처님 가르침은 ‘바로 이 본인, 자기를 알라.’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천경만론(千經萬論)이 자기 하나 똑바로 보자고 하는 겁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역사를 5천 년 문화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소위 20세기 문화시대라 해서 어느 때보다도 모든 문명과 문화가 발달했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세계 종교의 종가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해방 이후 많은 종교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방황하는 생활을 하고, 갈등은 더욱 많이 일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지구촌이라고 해서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세계의 정보를 들을 수 있고, 물질도 풍요롭게 모두 잘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정신세계, 인간이 사는 참다운 행복의 세계에서 비춰보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극히 모순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여 년 전에 “인간은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전에는 인간 밖의 위대한 존재를 신앙하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종교가 판을 쳤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교에서는 브라만신이 우주를 다 창조했고, 인간은 어디까지나 신의 지배 하에서 피조물로 남아 있는 것이며, 신과 인간이 현격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것을 종교학술적으로 ‘신인현격교(神人懸隔敎)’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출해내는 천당과 지옥, 사생육도(四生六道) 모든 것을 창조해내는 것은 바로 인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하늘 위나 하늘 밑에 자기가 가장 중요한 존재(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인류 역사상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만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지러웠던 모든 사상계가 정돈이 되고, 그 이론체계를 확실히 밝혀서 오늘날까지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팔만사천법문을 통해 전 세계 문화인들에게 체계적인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각도로 말한다면 오척단구 우리 몸은 아무리 가꿔봐야 100년에 막을 내릴 존재입니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만나면 반드시 이별하고, 모이면 흩어지고, 나면 죽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 몸은 났기 때문에 없어지게 마련이고, 만나면 흩어질 인연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 육체를 움직이는 핵심은 아무 형상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것은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사종교들이 자기 인생에 가장 위대한 하나의 절대적인 존재를 밀어붙이고, 외계의 어느 위대한 신을 따라가는 신본(神本)종교가 아직도 지구촌 구석구석에 큰 세력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를 말하기 이전에 모든 인간의 불행을 가져오는 큰 암적인 고집입니다. 종교가 먼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먼저 생긴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머리에서 짜낸 부산물입니다. 부처님은 무슨 위대한 힘을 과시하고 우주를 마음대로 창조하고 파괴하는 그런 힘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시공을 초월해 흐르는 진리를 발견해서 그 진리를 깨우치고, “모든 인류가 그 진리를 따라 살 때 행복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을 똑바로 보고 아는 것을 부처의 세계라 하고, 그 자리를 가지고도 헤매는 것을 중생이라 합니다. 한 마음 깨치면 중생이 바로 부처고, 한 마음 미혹(迷惑)하면 부처가 바로 중생입니다. 이 자리는 절대 평등해서 고하가 없고 일체 시비 장단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위대한 자리를 놓치지 않고 불생불멸하는 자기를 향해 행복하고 복되게 살 수 있는가. 이러한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것이 부처님의 법문입니다. 그러한 진리는 찾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선과 교와 주역과 기도와 온갖 팔만사천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하는 곳은 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선하고 염불하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것은 뭐냐. 참선은 쉽게 풀이하면 모든 것을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보통 중생의 마음은 단 5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즉 기쁜 생각, 슬픈 생각, 미운 생각, 사랑하는 생각 등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머리가 착잡하고 어지러운 것을 정리하는 방법이 참선입니다. 가만히 죽비치고 여러분의 빛나는 자기 광명을 바깥으로 휘두르지 말고 희로애락이 일어나는 그 뿌리가 뭔지를, 멱살을 바짝 잡고 따라가는 것이 참선입니다. 그렇게 해보면 모든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쉬는 것을 무아(無我)의 세계라 합니다. 너와 나, 시비장단이 끊어진 절대적인 진아(眞我), 참 자기로 돌아설 때 모든 갈등은 녹아내립니다.

간단한 논법이죠. 불교는 절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역량 따라 들어가는 길이 다를 뿐입니다. 하늘의 옥황상제나 신도 우리 인간과 똑같은 바탕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생육도가 그렇습니다. 태난습화(胎卵濕化)로 태어난 일체생명이 부처님과 평등한 자리입니다. 다만 자기가 익힌 업(業)에 따라 사생육도에 떨어졌을 뿐이지, 어느 신이든 절대평등한 자리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선행을 하면 선(善)의 세계로, 악행을 저지르면 악업대로 열리는 것이지, 어떤 제삼자가 너는 미우니까 지옥에 보내고 너는 고우니까 천당에 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를 믿으면 다 구원되고, 자기를 믿지 않으면 다 멸망시킨다는 그런 조물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반듯한 진리에 눈을 떠야합니다. 부처님 진리에만 눈을 뜨면 모든 성인의 길이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그러한 바른 이치를 따라 살 때 우선 내 인생이 헤매지 아니하고, 내 가정 내 사회 내 국가 전 인류에 빛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인생살이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여러 가지로 연구가 부족하고 공부가 부족합니다.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하에서 40년간 핍박을 받고, 우리 스스로 각성해서 깨친 것이 아니라 외세의 쇠사슬에 묶여 정신없이 풀려 나서, 아직도 속국과 같이 제나라의 사상을 찾지 못하고 외래사상에 병들어 갈팡질팡하는 우리 국민이 많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잘사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순간 순간 자기 시간을 반성하면서 자기 시간이 빛이 나는지 어두컴컴한지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회를 밝히는 데에도 가정을 먼저 밝히고, 그 빛이 이웃을 밝히고 전 세계 인류를 밝힐 수 있습니다. 탐(貪), 진(瞋), 치(痴)의 어두운 그림자가 녹아나고,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진리의 빛이 켜지는 대목이 염불하고 참선하고 부처님께 절하는 과정입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79호(2003년 4월 5일자)에서 가져왔습니다.

2010-12-10 / 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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