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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합과 공존은 ‘참나’ 찾는데서 비롯”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송월 스님(해인사 한주)

온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나, 신문을 펼쳐드나 온통 전쟁이야기 뿐인 것 같습니다. 천 사람 만 사람에게 물어도 전쟁은 절대 일으켜서도 안 되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대답할 겁니다. 모든 이들이 전쟁의 폐해는 잘 알고 있어선지 올바른 답변은 잘합니다. 우리나라도 6.25전쟁을 겪지 않았습니까. 아직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많구요.

이 모두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나(眞我)’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자기를 바로보지 못하는데 남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까. 갈등과 분쟁은 다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할 수 있지요.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남의 허물만 보이지 않고 자신의 허물도 살필 수 있기에 하심(下心)하는 자세가 됩니다. 하심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고 존경하는 마음이므로 내 몸과 같이 아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한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한 몸이므로 사랑한다.”는 뜻이 더 적당한 표현입니다. 우리 범부(凡夫)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자식을 둔 부모는 어렴풋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식의 불행을 자신이 대신하려고 하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동체대비심인데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바로 하나의 몸으로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기만 잘났다고 싸워서는 안 됩니다.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도(中道)라 하는데, 중도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이란 뜻이 아니라,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남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아는 것이 중도인 것입니다.

동체대비심을 갖고 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은 이라크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체중생은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단지 번뇌에 덮여 있음으로 인해 볼 수가 없다”는《열반경》의 말씀을 떠올린다면 대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무참히도 짓밟는 제국주의적 야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번뇌는 얼마만큼의 번뇌일까요. 아무리 저들이 그들의 눈에 비친 대로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사담 후세인의 독재정치와 대량살상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죄악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21세기는 지구촌시대 입니다. 세계인들이 자기 집 드나들 듯 오지를 누비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오가고 물자가 왕래하다 보니 전염병도 전파되기 마련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화학무기들이 내뿜은 독한 물질들은 온 지구를 뒤덮고 말 것이고, 그러한 유해한 물질들이 전염병을 유발하고 퍼져나가게 합니다.

빠알리어로 된 증지부(增支部) 경전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집단이 있다. 첫째는 권력이나 재력, 권위를 갖춘 ‘윗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모인 집단이요, 둘째는 구성원의 이해(利害)와 득실(得失)을 위하여 모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충족시키면서 다투지 않아도 되는 동안만 존속하는 집단이요, 셋째는 진리를 중심으로 하여 화합을 생명으로 알고 모인 집단이다. 이들 가운데 올바른 집단은 세 번째 구도 집단으로, 이 집단에서는 하나의 마음으로 생활하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 공덕을 낳기 때문에 거기에는 평화와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세상은 욕망과 이해관계로 다양한 집단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은 늘 욕망의 극대화가 행복이라는 잘못된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신뢰, 사랑과 관용 보다는 권모술수의 억압, 폭력과 온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있는 불자라면 행복은 마음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라는 원효대사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도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어부처님께서는 화합의 중요성을 마지막까지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말아라. 물과 젖처럼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라. 함께 내 교법(敎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道)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평안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또《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코삼비국의 코시타동산에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 구심이라는 비구는 항상 싸우기를 좋아해서 악행을 범하고 남을 앞에 두고 욕질을 하며 칼이나 몽둥이를 잘 휘둘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아침 구심 비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도를 닦은 것이 아니겠느냐? 세상은 무상하여 목숨은 오래가지 못하느니라. 너희들은 도를 닦으면서 공연히 서로 다투지 말라. 서로 때리지도 말고 욕하지도 말라.” 부처님께서는 옛 인연담을 이끌어 말씀하시면서, “남의 잘하는 것도 보지 말고, 잘못하는 것도 보지 말라”고 하시면서 게송으로 “서로 치고 싸우지도 말고 말로 다투지도 말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든 생명에게 근심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내가 항상 칭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 원소가 화합하여 이뤄졌습니다. 그 화합의 인연이 다하는 날 육신도 인생의 종지부를 찍게 되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도 마찬가지구요. 인간은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연을 일방적으로 훼손하고 파괴합니다. 인간 서로 간에도 불신하고 미워하며 그로 인해 서로 헐뜯고 전쟁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그렇게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의 화합이 깨지는 날 이 지구라는 푸른 별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 나오신 것 유쾌하고, 바른 도의 설법이 유쾌하며, 수행자들 모여 화합함도 유쾌하나, 화합하면
언제나 편안하니라.”

* 이 법문은 만불신문 80호(2003년 4월 19일자)에서 가져왔습니다.

2010-12-17 / 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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