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근대 중국의 고승』
아편전쟁, 청일전쟁, 신해혁명, 군벌의 난립, 5·4운동, 북벌전쟁, 중일전쟁, 국공내전, 중국공산화, 대약진운동 등은 불과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대륙은 전쟁터였고 혁명의 선전장이었다. 민초들의 삶은 강퍅하고 고단했다. 말세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천년을 이어온 중국 불교 교단 그리고 수행자의 삶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양무운동 당시에는 사원을 학교로 개조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승려는 티베트 침공을 앞둔 중국 정부에 의해 침략의 앞잡이가 될 것을 종용받기도 했으며 대약진 운동이 일어나자 “무사의 죄상”을 운운하며 승려를 인민재판장으로 불러내곤 했다.
이런 시기에 조직이 명맥을 유지하는 보통의 방법은 세월에 부침하거나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고승들의 길은 남달랐다. 주린 배를 채우지 못했지만 선승들을 모아 선방을 열고 또 일부는 폐관(무문관) 수행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일체의 제사나 염불을 통한 호구를 거부했다. 일부는 교육에 매진했다. 무창불학원과 민남불학원, 한장교리원 등 교육기관을 세워 근대적 승려 교육과 불교연구에 매진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근대 중국에서 활동한 고승 19명의 이야기로 각각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현재의 잣대로 인물을 평가하는 방법을 지양하고 당시 절박했던 시공간을 최대한 이해하려 힘쓰며 고승들의 생애와 사상을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 불교의 주제를 다섯 가지로 뽑았다.
1부. 선승과 수행의 부활 중국불교의 가장 큰 전통과 특색은 아마도 선(禪)일 것이다. 때론 그것을 중국의 전통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 말 선종은 쇠락했고, 수행의 풍토는 말이 아니었다.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수행 풍토의 개혁과 진작을 위해 고군분투한 선승이 여럿 출현했다. 쉬윈(虛雲)이나 에카이(冶開)나 라이궈(來果) 등은 각고의 노력으로 무너진 선풍을 일으켰다. 그들의 삶과 수행에서 수행자가 과연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볼 수 있다. 혼란스러운 근대였지만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여행과 침잠은 계속 됐음을 보여주었다.
2부. 승려교육과 불교개혁 근대시기 계몽가들이 근대적 교육에 매달렸듯 불교계도 새로운 승려를 배양하기 위해서 승려 교육에 주목했다. 아울러 타이쉬(太虛) 같은 개혁적 승려가 출현하여 봉건적 습속에 젖어있던 불교계를 바꾸고자 노력했다. 쫑양(宗仰) 같은 승려는 불교계 내부가 아니라 사회 변혁에까지 역할을 했고, 쑨원 등과 연대하기도 했다. 전근대인이 근대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곤혹을 불교인도 마찬가지로 느꼈고, 힘들지만 그 운명을 감수했다.
3부. 종파불교의 계승과 학승 중국의 경우 수당대에 불교토착화가 거의 완성된다. 이때 불교 내의 다양한 이론과 수행방법론이 각각 하나의 전통으로 독립하여 종파를 형성한다. 이런 종파들은 독특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여 화엄학 같은 철학적 발전을 꾀한다. 송대 이후 종파불교는 많이 쇠락했다. 근대시기 비록 희미했지만 종파불교가 갖는 독특한 교리 이해와 집중도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와 함께 종파불교 연구를 통한 전통적인 학승과 근대적 사유를 장착한 근대적 학승이 출현한다. 인순(印順) 같은 근대적 학승도 전통적인 불교연구방법을 계승했다. 새로운 방법론의 출현은 단절이 아니라 계승과 창신을 통해서 가능했다.
4부. 밀교열과 티베트불교 중국 밀교는 당대 이후 미약해졌고 청대에 이르러 거의 명맥이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불교의 소개와 밀교승의 도래를 통해서 중국 불교인들은 밀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 몇몇 승려는 일본에 유학하여 밀교의 계를 받아왔고, 중국에 밀교를 부흥시킨다. 수백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밀교의 교리와 수행, 의식 등은 사람들에게 크게 각광받았고, 새로운 전통으로 부활한다. 밀교 부흥의 연장선에서 티베트 불교에 대한 관심이 발생했고, 티베트 유학승이 출현하게 된다. 파쭌(法尊) 같은 이는 티베트 불교를 소개하고 티베트 불전을 소개하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한다. 전통적인 중국불교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불교 이해가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5부. 정토 신앙과 염불법문 근대가 이성이나 합리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종교적 신앙에 그것을 쉽게 대입할 수는 없었다. 중국불교의 가장 오래된 신앙인 정토 신앙은 근대 시기에도 여전히 굳건했다. 포성이 난무하던 시대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토세계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서방극락정토이든지 아니면 내 마음의 정토이든지 삶이 버거운 만큼 희망도 강렬했다. 고승 인꽝(印光)은 수십 년 염불수행을 통해서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고, 위안잉(圓瑛)은 참선과 염불수행의 결합을 강조하여 사람들의 수행을 이끌었다. 전통의 것이지만 근대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유용한 것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불광출판사, 360쪽, 1만8천원>
출처 :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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