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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승한 스님 지음 | 하지권 사진 / 불광출판사 /  15,000원 

 승한 스님과 함께 떠나는 감성 치유 산사기행

너나 할 것 없이 상처 받기 쉬운 시대이다. 아니 옛부터 세상살이는 녹녹치 않았다. 오죽하면 불가(佛家)에서 이 세상을 고통을 참고 견디는 곳이라 하여 사바세계라 하고, 고해(苦海)라고 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은 여전하다. 하지만, 오늘날 고통의 원인이 다양해지고, 고통의 강도도 심해진 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고도산업사회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치열한 경쟁으로 상처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외로운 영혼의 군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하고, 치유가 절실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치유법 역시 난무하고 있다. 명상, 음악, 운동, 글쓰기, 여행 등등. 더불어 스트레스 관련 사업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종교를 떠나 템플스테이에 대한 관심이 고무되는 것도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바야흐로 템플스테이가 활성화되는 초여름, 현재 경기도 가평 대원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지도하고 있는 승한 스님이 쓴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이 불광출판사에서 나왔다.

기존 여행서들과 달리 이 책은 승한 스님과 함께 떠나는 감성 치유 산사기행이라 할 만큼 수많은 치유법을 두루 아우른 책이라 할 수 있다.

“비로소 나는 알 것 같았다. 지난 밤 내가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를. 20년도 넘었지만, 간밤의 꿈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내 마음의 무간지옥이었던 것이다. 십대 때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알코올중독자로 살면서 빠져들었던 내 삶의 흔적이 아직도 내 심연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흔적과 무간지옥들을 지우기 위해 나는 지금 절집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필이면 대승사에서 그런 꿈을 꾼 것은 먼 숙세부터 대승사는 내 마음의 무간지옥과 깊은 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숙겁의 연을 해탈케 하기 위해 간밤의 꿈으로 나를 대승(大乘)의 수레바퀴에 태워 철위산 무간지옥을 한 바퀴 휘돌게 했는지 모른다.”

-본문 ‘대승으로 우는 종소리(문경 사불산 대승사)’ 중에서

승한 스님은 수행자이기 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로 등단한 시인이고, 시인이기 전에 상처 받은 영혼이었다. 누군가 시인은 천형의 죄인이라고 했던가. 전생부터 이어져 온 타고난 시인의 감수성은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불의에 직면하여 보통사람보다 몇 곱절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로 인해 젊은 날 한때 알코올 중독으로 알코올 병동에 입원한 적도 있었고,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나날을 보낸 적도 있었다.

승한 스님이 서울 도봉산 석굴암을 시작으로 순천 조계산 송광사까지 전국의 24개 산사를 순례한 이 책이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산사기행을 통해 근원적 고통을 치유한 이야기와 자신의 깨달음을 갈무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길을 떠나 산사에서 풍광을 보고, 그 절에 깃든 옛 스님들의 발자취를 기리고, 절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내고, 절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새벽예불을 하고, 절을 하고, 참선을 하는 산사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수행이요, 내면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두었던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종의 감성치유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꿰뚫는 시인의 감수성과 수행자의 남다른 통찰력으로 빚은 산사기행

원효 스님의 걸출한 족적 뒤에는 그 같은 성격 유형과, 비록 ‘3일간의 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요석 공주라는 빛과 그림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랑을 찾아 요석 공주의 품에 들어갔다가 다시금 요석 공주의 품과 아들 설총을 버리고 깊은 산속으로 잠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원효 스님의 삶의 고뇌는 무엇이고, 꿈과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빛과 그늘은 무엇이었을까?

-본문 ‘3일간의 사랑(동두천 소요산 자재암)’ 중에서

시인이자 수행자인 저자는 ‘3일간의 사랑’을 통해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원효 스님으로 하여금 경계 없이 자유자재로 놀게 한 큰 보살, 요석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오르다가 서기 644년 의자왕 4년의 백제 군사력을 예로 들며 원효 스님 창건설을 일축한다. 또한 ‘몸도 마음도 짐도 모두 다 내려놓지 않으면 끼어갈 수 없는’ 비좁은 암문을 지나면서는 공광규 시인의 시 구절처럼 ‘부처님의 기획 프로젝트’임을 통감한다.

이렇듯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 곳곳에서 우리는 역사를 꿰뚫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과 수행자의 탁월한 통찰력을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속에 담긴 사찰의 역사와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져 글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된다.

더불어 스님의 처절한 구도열과 고뇌와 마음 치유의 장면 장면이 담겨 있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 보통사람과 똑같이 고뇌하고, 아니 더 깊은 상처로 얼룩진 영혼, 나를 찾아가며 비로소 괴로움에서 환골탈태하게 된 스님의 산사기행을 읽다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스님처럼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내밀한 상처가 치유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여태까지 나는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환(幻)으로만 살아왔다. 또 탐 ․ 진 ․ 치, 색 ․ 성 ․ 향 ․ 미 ․ 촉 ․ 법,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감옥에 나를 스스로 가두고 살았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갇혀 산 것이다.

나는 오늘 삼천사 마애불 앞에 엎드려 나에게 묻는다. 못나면 못난 대로, 뭉툭하면 뭉툭한 대로, 기울어지면 기울어진 대로 앉고 서서 나도 마애불 같은 눈과 코와 입술로 살아갈 순 없는가? 내 삶의 상감무늬를 새길 순 없는가?
화두(話頭) 하나 들고 산짐승처럼 걸어 나오는 나에게 삼천사 마애불이 속삭였다.

“너 없이 살아봐!”

- 본문 ‘돋을새김과 얕은새김(서울 북한산 삼천사)’ 중에서

승한 스님은 서울 북한산 삼천사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환으로만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갇혀 살아 왔음을 깨닫는다. 당신 자신의 깨달음을 마애불의 속삭임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 중의 하나다. “너 없이 살아 봐.”라는 말 속에 깨달음이 담겨 있다. 늘 ‘나’라는 것에 갇혀 그토록 번민하고 천형의 죄인으로 살아왔던 스님은, 무아(無我)를 깨닫고, 연기법을 깨달음으로써 대자유인으로 환골탈태하였음을 살짝 보여준다.

“지난 이년 여 동안 나는 마음의 순례자가 되어 절집을 돌았다. 그리고 절집에 갈 때마다 다비드 르 브르통(프랑스 사회학자)의 전언처럼 나 ‘스스로에게 자발적으로 부과한 속죄’를 통해 나를 통절히 반성하고, 그 반성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나를 지켜보았다. 그건 나 같은 나그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다. 길(道)로 나서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도를 체험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진실로 나를 통찰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여간해선 길 위의 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 본문 ‘뜻이 높아서 왔느냐? 티끌 같아 왔느냐?(순천 조계산 송광사)’ 중에서

맨 마지막에 찾은 산사였던 송광사를 찾아가는 스님의 마음, 첫 산사부터 이 책을 통해 승한 스님과 함께 울고 웃으며 순례해온 독자들은 송광사에 이르러 산사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하지권 작가의 맑은 산사 사진이 또다른 카타르시스를 준다. 사진을 통해서 마음의 안락과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게 되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글 · 승한
서울신문 신춘문예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동시가 당선되었다.
지은 책으로 『나를 찾는 산사기행』 외에 몇 권의 시집과 동화책이 있다. 지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으며, 현재 경기도 가평 대원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하지권
불교사진을 찍은 지 10년이 넘었다. 전에는 월간 「샘이 깊은 물」 사진기자로 일했었다.
불교와 첫 인연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사진DB작업이었다. 중간에 초조대장경과 화엄석경도 복원작업을 했다. 총 9년이 걸렸다.
현재 불광출판사에서 모든 사진 이미지를 책임지고, 얼마 전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이 1년 동안 사진작업을 거쳐 책으로 나왔다.
그 밖의 단행본 사진작업으로는 『서울 북촌에서』, 『아름다운 밥상>, 『즐거운 소풍』이 있다.

2011-07-08 / 3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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