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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 불 들어갑니다 -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임윤수 글 ? 사진/ 불광출판사 / 12,000원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거화(炬火)”라는 선창에 따라 연화대에 불이 붙는다. 화염이 치솟자 다비장 근처에 있던 스님과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우리가 아무리 “어서 나오세요.”라고 소리쳐도 스님은 불이 붙은 연화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스님들의 다비식에서 보게 되는 이 마지막 의식은 또 하나의 법문이다.

“응애~” 하는 울음소리로 시작된 생은 “깔딱!” 하고 숨 거둔다는 표현으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생자는 필멸이며 나 역시 한 줌의 재가 되어 지수화풍으로 환원된다는 큰스님의 가르침이요 결국 생과 사가 둘이 아니라는 무언의 설법인 것이다.

스님들의 다비식에 대해 다룬 최초의 단행본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열반에 들었던 큰스님 열일곱 분의 다비식 현장 취재기다.

저자는 6년 동안 석주 스님, 서옹 스님, 숭산 스님 등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선승들의 다비식장을 직접 찾아보고 취재한 내용 그리고 큰스님들의 평소 수행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15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진중하지만 맛깔스럽게 펼쳐보인다.

저자가 찾은 다비식장 풍경은 같은 듯했지만 모두 달랐다. 나무와 숯, 가마니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거기에 관을 올려 거화(炬火)를 해 재 속에서 뼈를 수습하고 마지막으로 재를 날리며 산골을 하는 등 다비식 풍경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사찰과 문중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연화대의 모양도 달랐고 불을 붙이고 사리를 습골하는 방식 모두 달랐다. 심지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비식장 하늘에는 갑자기 무지개가 뜬 모습을 보고(법장 스님, 정천 스님) 큰스님의 높은 법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3년 전에 집을 나갔던 개가 돌아와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고 다비장을 지키는 모습(명안 스님)을 보고 평소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따뜻한 스승이었던 님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 속의 글은 단순한 ‘다비장’ 풍경이라기보다는 열반하신 큰 스님들이 평소에 우리에게 해왔던 이야기들의 묶음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

다비식은 가신 ‘님’에 대한 이승에 남은 사람들의 마지막 의식이다. 그 속에서 열반에 든 선사들은 무언의 설법을 하지만 우리에게 육성으로 들려주었던 마지막 법문은 어쩌면 임종게인지도 모른다.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청화 큰스님 임종게)라고 일갈을 하거나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법장 큰스님 임종게)라고 일갈하며 우리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남긴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깊은 가르침은 결국 무언(無言)인지도 모른다. “스님 사람들이 열반송을 물으면 무어라 할까요?”라는 질문에 “그런 거 없다고 해라.”라고 한마디 던지고 그래도 “한평생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라고 재차 묻자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갔다고 해라.”(서옹 스님)라며 우리를 더욱 깊은 심연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임윤수가 말하는 임윤수

1960년 쥐띠 해, 햇살 좋은 봄날 벽항궁촌인 충북 괴산에 있는 군자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무시(無時)로 꿈꾸는 출가와 그렇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둔한 중생으로 재료공학에서 상변태(相變態)를 전공한 공학박사(工學博士)이지만 삶에 수반되는 심변태(心變態)에 관심이 더 많아 몽환적일지언정 공학자(空學者)를 꿈꾸는 영원한 철부지다.

산을 찾아다니다 보니 산사가 보였고, 산사를 찾아다니다 보니 풍경소리가 들리고 연화대에서 피어오르는 그림자가 보였다. 아직까지는 보지 못한 ‘마음’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기에 산길을 걸어왔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그 마음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떨어진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 인생 역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임을 알기에 허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잘 안 된다.

산길을 걷고, 산사를 찾아다니며 도토리를 줍듯 모아온 이런 마음 저런 풍경을 네 권의 책,『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가야넷),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 2』(가야북스), 『울림』(가야북스), 『열림』(가야북스)으로 출간했다.  

 


 

2011-10-21 / 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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