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스님(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기에‘나’란 존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옷도 다르게 입었고, 신체구조도 다르지만 부처님 품안에 있는 우리는 결국 부처님을 따라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갑니다. 그러나 청담스님이 바랬던 것을 할 수 있겠나 돌아보면 그것은 멀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오늘 당장 내 앞에 어려운 일부터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걸 먼저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청담스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랬습니까?
도선사는 참회도량입니다. 참회가 무엇입니까. 죄를 지어서 잘못했다고 비는 게 아닙니다. 나를 깊이 있게 돌이켜보는 게 참회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나’란 존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 나’란 존재를 확실히 돌아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참회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나’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나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나를 말합니다. 돈이나 권력, 고3인 자녀를 돈이 없어 대학교에 보내지 못한다는 등의 고민을 하는게 아니라 내 길을 제대로 잘 살펴갈 수 있는 현명한‘나’란 것이 있습니다.
훌륭한 물건이 탐이 나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하면 먼저 내 그릇을 비워야합니다. 시장에 갈때 바구니를 잔뜩 채워 가면 어쩌죠. 빈 바구니를 가져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 뜻대로 담을 수 있습니다. 참회는‘나’란 존재를 싹 비우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내 일도 못하면서남의 일을 봐주는 바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 함께 합장하고 따라해 보세요.“세존은 가장 높고 거룩하시어 / 모든 번뇌의 씨를 잘 끊었으니 / 한량없이 훌륭한 온갖 공덕이 / 부처님의 한 몸에 두루 갖추어졌네.” 모든 근심걱정은 누가 담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나를 만들어 줄 때는 없었습니다. 내가 만든 것입니다. 부모가 만들어 준 귀한 몸을 내가 만든 번뇌 때문에 상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절에 와서 부처님께 고3 자녀, 영감 직장을 위해 기도하는 건 나에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건 다 허약한 일입니다. 이 덕분에 신도들이 절에 많이 와서 스님들이야 좋겠지만 실제는 공부를 하러 와야 합니다. 도선사 실달학원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내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하세요.“간절히 남을 따라 찾지 말라 / 점점 나하고 멀어 간다 / 지금 내가스스로 가니 / 가는 곳마다 만나는구나.”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부처님도 현실을 잘 살피는 어른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대중을 모아놓고 법문을 하며“여러분, 일생을 산다고 하니 그 일생을 나한테 설명해보소”하니 좌중에 한 분이 일어나“나는 부모로부터 몸을 받았는데 이 몸 사라질 때까지가 일생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숨을 한번 줄였다가 내 쉬는 사이를 일생이라 생각합니다.”또 한사람 일어나서“난 한 뜻을 가졌다가 그 뜻이 다할 때까지를 일생으로 삼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내가 들으니 세분 말이 다 옳아. 그대로 현실이라. 다 옳은데 무게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줄 줄 아는 부모가 돼야 됩니다. 그래야 1등 효자요, 1등 국민입니다. 그것이 보람 있게 사는 겁니다.
* 만불신문 119호(2004년 10월 30일)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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