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국씨 "초조대장경 1031년 이전완성,팔만대장경 강화도 아닌 남해서 제작”
“초조대장경은 착수한 지 77년 만인 1087년 완성된 것이 아니라, 현종(재위 1010~1031) 때 완성됐으며,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선원사에 설치한 대장도감에서 1236~1251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경남 남해에서 1237~1248년 판각됐다.”
불교서지학자 박상국씨(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가 7일 국립고궁박물관 특강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박상국 원장 초조대장경 완성 시기를 1087년(선종 4년)으로 보는 기존 학설은 <고려사> 기록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고려사>는 1087년 왕이 개국사, 흥왕사, 귀법사에서 대장경 조성을 축하하는 행사를 했다고 전하는데, 이는 대장경 봉안식과 판전 낙성식을 서술한 것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판각은 이미 마쳤다는 근거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현종이 5,000권의 비장(秘藏)을 새긴 데 이어 문종이 10만송의 계경(契經)을 새겼다는 “대각국사 의천의 문집 기록 등으로 볼 때 초조대장경은 현종 때 완성됐으며 판각은 10년이 안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문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판각한 재조대장경도 16년밖에 안 걸렸는데, 송나라 개보칙대장경을 거의 그대로 베껴 새긴 초조대장경이 77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고려의 목판인쇄술이 세계 최고였음을 감안할 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팔만대장경의 조판 장소 강화도 선원사가 아니라 경남 남해라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강화도 선원사 판각지 학설은 ‘조선 태조가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을 보러 용산강에 행차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한다"며, “선원사는 1245년 창건됐고 이때는 팔만대장경 판각이 90% 이상 끝난 시점이라 제작 장소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팔만대장경은 강화도 대장도감과 지방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제작했다고 알려졌으나, 대장도감 판본과 분사대장도감 판본을 대조해 본 결과 두 곳 모두 경남 남해에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팔만대장경 조성 당시 경남 남해는 고려 무신정권 최고 실력자인 최이의 처남 정안이 머물던 곳으로, <고려사>는 정안이 나라에 사재를 바쳐 대장경의 절반 정도를 여기서 판각했다고 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강화도는 당시 정부가 국민을 버리고 피란간 곳이기 때문에 대장경을 만들 형편이 아니었던 반면, 남해는 전란을 벗어난 섬인 데다 정권 실세의 근거지여서 제작비 조달도 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올해 초조대장경 천년을 맞아 고려대장경 1000년을 기념하는 요란한 기념행사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천년맞이 방법은 고려대장경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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