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 스님 외 14명 지음 <지혜가 있는 사람은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막 발을 뗀 사람도 10년이 지난 사람도 불교의 교리나 선(禪)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렵다’는 말을 반복한다. 빼곡히 들어찬 한자나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선사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을 볼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교에 ‘입문’하기로 마음을 낸 사람이라면 이런 애먼 지청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법회에 가기만 하면 된다.
스님을 상대로 하는 설법이 아닌 이상 ‘법회’에서 들려주는 스님의 법문은 쉽고 명쾌하다. 법문에는 각주도 없고 애매한 결론도 없기 때문이다.
법문에는 각주가 없다
이 책은 스님들이 법회에서 한 법문을 모은 것이다. 때론 수천여 명이 모였고 때론 2~3백여 명의 대중이 모였다.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선문답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도 아니고 어려운 교리를 배우기 위해서 온 사람도 아니다. 뭔가를 얻으러 온 사람도 있고 뭔가를 비우러 온 사람도 있다.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 스님들은 얻으러 온 사람에게는 비우는 법을 가르쳐 주고, 비우러 온 사람에게는 채우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독자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한 것이다. 때문에 생생하고 눈에 잡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에서 스님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일상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제가 일본에서 유학할 때, 가난한 유학승 신분에 햇살 드는 비싼 집을 구할 수 없어서 빛 없는 집에서 4년을 살았습니다. 그때 생각하길, 다음에는 절대로 햇빛 들지 않는 집에서는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해인사 근처에 혼자 공부하는 처소 하나를 장만하고 사방을 유리로 만들어 햇살 넘치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 후 대구 동화사 승가대학에서 강의하게 되어 가끔 오고가는 형편이 되었는데, 작은 결벽증이 있는 탓에 갈 때마다 유리를 깨끗하게 닦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처소에 도착해 보니, 많은 참새들이 집 앞에 떨어져 죽어 있었습니다. 유리가 허공인 줄 알고 날아가다가 충돌한 것이었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모습을 본 뒤로, 이전만큼 유리를 깨끗하게 닦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청결한 것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은 새들에게 미안해하며 해당화 나무 밑에 고이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집이 워낙 고지대에 있어서 그간 꽃을 피우지 못했던 해당화 나무가, 이듬해 너무나 예쁜 꽃을 피워 올린 것입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하여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그 순간 꽃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 참새들아. 너희들이 해당화 뿌리로 들어가 봄날에 꽃으로 되살아났구나. 눈앞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구나. 너희들은 죽지 않았구나.’ 존재는 해체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새롭게 거듭날 수 없다는 사실을,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윤회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본문 102쪽~103쪽 해월 스님 법문 中
이 책속에서 법문을 하고 있는 스님의 일상은 법문을 듣고 있는 신도들과 비교해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법문을 하며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 할지라도 새로운 세계로 전환될 수 있음을 그리고 결국 죽음과 태어남이 하나로 얽혀 있음을 온전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스님들의 경험에는 웃지 못할 상황도 종종 엿보인다.
잠깐 제 출가 본사인 금산사에서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당시 한 보살님께서 절에 자주 오셨는데 종종 뵙다보니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보살님께서 제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관세음보살보다 더 영험 있는 분이 누굽니까?” 질문을 받은 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럼, 영진 대사를 찾으시오.”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결제를 맞아 선방에 들었다가 정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글쎄 금산사가 온통 웃음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살님께서 제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기도를 할 때마다 “영진 대사, 영진 대사…” 하며 제 법명을 불렀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보살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보살님께서 바라던 더 좋은 결과를 얻으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그분이 순수 하게 믿고 열심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70쪽~71쪽 영진 스님 법문 中
어떻게 보면 스님에게는 낯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지만 이 경험을 들려주며 스님은 무엇이든 그것을 확고히 믿고 일념으로 정진하면 그 마음이 도달하는 곳에 행복의 길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왜 마음의 주인을 찾아야 하나?
이 책에 등장하는 스님은 모두 열다섯 분이다. 많게는 50년 넘게, 적게는 25~26년을 헤아리는 기간 동안 절집에서 살아온 다양한 이력의 수행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법문 속 메시지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왜 ‘마음’을 찾아야 하는지, 두 번째, 왜 행복할 수 없는지, 세 번째 왜 내 이웃의 자비를 빌어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지가 그것이다.
첫 번째 ‘마음’을 찾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원산 스님은 경봉 스님의 말을 인용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더라도 그 주인을 찾아보지 않고 가면 무례한 일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 몸을 평생 끌고 다니면서 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문 16쪽~17쪽 원산 스님 법문 中
내가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마음을 찾는 일이 왜 중요한지 한 치의 애매함도 없이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곧 두 번째 물음, 즉 이 마음이 왜 행복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지현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천진불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어린아이를 보면 좋아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하는 건 요구사항이 많아질 때, 즉 욕심을 부리기 시작할 때입니 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욕심이 없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그 사람을 향해서 욕심을 부립니다. 이것이 인간이 살면서 고통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기심은 항상 고통으로 향하는 문을 엽니다. 반대로 원력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는 마음이기에 행복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먼저 욕심을 원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원력을 세우고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바꾸어나갈 때, 그 속에서 삶은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60쪽~61쪽 지현 스님 법문 中
스님이 들려주는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욕심을 부리면 고통을 면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복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건 세 번째 질문, 즉 왜 내 이웃에게 자비로워야 하는지와도 연결되어 있다.
동서남북 사방팔방, 수많은 불보살들이 시방세계 어디에도 안 계신 곳이 없다고 합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불보살 들이 보이십니까?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문수·보현보살이요, 관세음보살입니다. 내 주위에 이렇듯 대승보살이 꽉 차 있는데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물에 빠져도 건져줄 것이요, 빙판에 넘어지려 하면 옆에서 잡아줄 테니 살아가는 데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이 말 을 듣고 속으로 ‘나는 보살이 아닌데 어쩌나?’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부터 보살이 되어보십시오. 자비심을 갖고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는 일 없이, 가슴에서 느껴지는 대로 솔직하고 바르게 행동하십시오.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먼저 나서서 야무지게 할 수 있는 사람,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바로 대승보살입니다.
본문 26쪽 평상 스님 법문 中
마음을 찾는 일 그리고 행복을 찾는 일 그리고 나와 이웃이 함께 하는 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열다섯 분 스님들이 들려주는 법문에는 이런 믿음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있다.
2011년에서 2012년까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감동이 있는 법문’ 모음
이 책은 불교계 주간지인 <법보신문>, 그리고 월간지인 <불광>에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실렸던 큰스님들의 법문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 1년간 많은 법문이 있었지만 그 중 일반인에게 곤혹스러운 교리 법문이나 선(禪) 법문은 대부분 제외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생활 법문을 위주로 선별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열다섯 편을 가려 엮었다. 때문에 독자들에게 무척 쉽고 친절하게 다가온다.
<불광출판사 펴냄 / 176쪽 / 1만 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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