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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가장 값진 행복”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묘허 스님(단양 방곡사 회주)

불교의 진리를 보면 우리의 본래 모습인 자성 즉 ‘참나’는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따로 없습니다〔不生不滅不垢不淨〕. 그러나 우리 눈앞에 있는 ‘나’는 태어나고 죽습니다. 우리 중생들 스스로가 생사 없는 ‘참나’를 망각하기에 부모님에게 얻은 육체에 집착해 일생 동안 육체의 종노릇을 하고 업을 짓습니다.

‘업’이란 말은 원래 인도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에서 유래했고, 중국을 거치면서 업(業)자로 번역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자체가 업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업은 사업(思業)과 사기업(思己業)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란 한 생각이 일어나는 마음을 말하며, 이것은 선악의 원인이 되고 죄와 벌의 근본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마음 속 결정으로 행동에 옮겨 실천을 하면 사기업이 됩니다. 사업과 사기업은 다시 그 행위에 따라 선업과 악업과 무기업으로 나뉩니다. 선업은 나와 남이 함께 이로운 행위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악업이라 하며, 남에게 해도 득도 되지 않는 행위가 무기업입니다.

또한 삼업이라 부르는 신(身), 구(口), 의(意) 즉 몸과 입과 뜻 이 세 가지가 업을 짓는 기관입니다. 몸으로는 살(殺), 도(盜), 음(淫)을 행하게 되는데, 이것을 신삼(身三)이라고 합니다. 입으로는 네 가지 업을 짓는데 망어, 기어, 양설, 악구가 그것입니다. 뜻으로는 탐, 진, 치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짓습니다. 이를 총칭해 십악업(十惡業)이라고 하고 이를 참으면 십선업(十善業)이 됩니다.

나와 남이 함께 선악의 일을 저질러 그 결과를 함께 책임져야 할 것을 공업(共業)이라고 합니다. 나 혼자 저질러 혼자 책임 져야 하는 것은 불공업(不共業)이라 합니다. 대체적인 성격을 띤 업을 인업(因業)이라 한다면, 구체적인 것은 만업(滿業)이라고 합니다.

신구의 삼업을 통해 짓는 업은 백천만 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대가와 과보는 돌려받게 돼 있습니다. 선업은 선보, 즉 좋은 일은 좋은 결과로 받으며 악업은 악보로 받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더러 “업이 어딨습니까. 요즘 못되고 악한 놈들이 더 잘살던데요?”라고 질문 합니다. 이런 현상은 전생에 지었던 업들이 과보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지어온 업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불교의 진리를 알고 공부하면 도래된 업을 받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빚은 갚아야 없어지듯이 업도 받아야 소멸됩니다. 그런데 전생이나 과거에 지은 업에 대한 결과를 지금 받으면서 제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순간 짓고 있는 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 자체를 안 지을 수는 없기에 인생을 올바르게 삶으로써 악업보다는 선업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행복은 만족에 있습니다.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게 없다고 느낀다면 인과를 절대적으로 믿으십시오. 오늘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 지었던 원인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걸 믿으면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미운 사람에게나 고운 사람에게 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 겁을 이어오면서 지은 죄도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생각 하면서 간절하게 뉘우치고, 또 지어놓은 나쁜 업보다 많은 공덕을 짓고 쌓음으로써 그 업장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일어나 저지르고 싶은 것도 한 생각 돌이켜 선업으로 옮기면 한량 없는 복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32호(2005년 5월 28일자)에서 옮겨 왔습니다.

2012-04-06 / 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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