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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엄 스님의 삶과 수행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정인영 지음 이향순 옮김 『한계를 넘어서』

묘엄 스님의 삶과 수행, 한국 비구니 승가공동체에 대한 생명력 넘치는 기록

최근에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던 몇 분의 큰스님이 입적하였다. 그중에서도 법정 스님, 지관 스님과 함께 비구니계의 큰 어른 묘엄(妙嚴) 스님이 주목을 받았다. 묘엄 스님은 뛰어난 율사(律師)이며 대강백(大講伯)으로 한국의 비구니 승단을 재건하는 데 앞장 선 분이다.

현재 한국 비구니 승단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교단의 인적 구성이나 역할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역사가들에게 비구니들은 ‘은둔의 소수집단’으로서 소외된 존재였다. 비구니의 삶과 수행에 대한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사에 빈자리로 남아 있다. 그 결과 한국불교사 해석은 주로 남성 출가자인 ‘비구’를 대상으로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편향적으로 조명되었다. 따라서 본격적인 ‘비구니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묘엄 스님의 일대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한국 비구니 승단의 재건과 정체성 확립 등을 조명하고 있다. 고명한 스님들의 행장기 특유의 미사여구를 피하고 문헌연구와 현장연구를 병행한 응용불교학의 방법론으로 한국 비구니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비구니로 살아온 한 개인이 내린 선택과 결정이 어떤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를 구명하기 위해 저자는 역사의 주역이나 관찰자의 증언 또는 회고와 같은 구술을 바탕으로 진실을 밝히는 구술사 연구방법을 도입하여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제공한다.

먹물 옷을 입고 출가자의 길을 선택한 한 사람이 그를 겹겹이 둘러싼 가족과 승가공동체와 국가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지를 밝히는 데 있어서 이러한 방법론은 매우 유용하다. 나아가 식민수탈과 전쟁으로 가난하고 혼돈스러웠던 시기에 한국 비구니 승가가 어떻게 강력한 교육체제를 수립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통을 재정비할 수 있었는지 설득력 있게 재구성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비구니의 삶이 색채 잃은 신화나 전설로 증류되어 버리기 전에 생명력 넘치는 사바세계의 역사로 기록된 감동적인 서사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삶은 서사 자체이고, 따라서 서사로서 구현되지 않은 삶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청담 스님의 친딸, 성철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라는 서사의 메타포

묘엄 스님의 입적이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끈 데에는 조계종 2대 종정 청담 대종사의 친딸이며, 성철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라는 사실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여성의 출가’가 한 개인의 범상치 않은 가족사를 내포한 극단적 선택의 메타포로 읽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논지는 “묘엄의 출생을 곧 청담의 파계의 결과로 인식하는 태도”라는 ‘특별한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펼쳐진다. 묘엄 스님의 제자인 저자 석담 스님(속명 정인영)은 비구니 승가의 일원이면서도 연구자로서의 객관적 성찰과 냉정한 관점을 놀랍도록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승단 내부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비구들에게 ‘버림받은’ 부모나 부인 혹은 자녀들에 관해 조명”하거나, “한국의 불교계가 성문제와 관련된 파계에 대해 비구나 비구니에게 보여주는 차별적 태도”를 논할 수 있게 한다.

한국 불교 전통에서는 가부장적인 유교사회의 영향을 받아 사미니가 비구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묘엄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성철, 자운, 운허 스님 등 당대의 비구 스승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특권을 누렸다. 저자는 이러한 특권의 향유가 특별한 한 개인에게 베풀어진 혜택을 넘어선 것이라고 본다. 비구 선사들은 임제선 전통의 가르침을 받아 ‘모든 중생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서의 불성론(佛性論)을 체화한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묘엄 스님을 비롯한 소수의 비구니 제자들에게도 성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열린 자세로 비구와 동등하게 해탈의 길로 이끌기 위한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저자가 연기적 서사로서 재구성한 묘엄 스님의 삶에는 개인과 공동체, 여성과 남성, 보편과 특수의 씨줄과 날줄이 겹겹으로 엮여 있다. 승단 내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치열하게 도전하고 비구니 승단의 정체성을 재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스님은 온 생애를 관통하는 수행자의 치열함으로 성의 한계를 넘어선다. 승가공동체에서 묘엄 스님이 ‘비구니 교육자’로서 ‘현대 한국 불교 최초의 비구니 율사’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상황’을 넘어서는 결연한 선택의 결과였다.

동국대학교출판부 / 400쪽 / 1만 5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2012-05-17 / 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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