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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집 생활로 들어가는 34가지 키워드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지안 스님 지음 《산사는 깊다》

산사를 찾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어떤 이는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다른 이는 휴식을 위해, 또 어떤 이는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품고 산사를 찾는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산사를 찾아갈까? 산속의 절집에, 스님들의 생활 속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힘, 삶을 변화시키는 강한 충동이 산속 스님들의 생활에 담겨 있다. 하지만 산사의 생활 문화를 이해하기란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삶과는 전혀 다른 가치와 원리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 뜻을 우리 일상의 말로 설명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짚어 주기 전에는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조계종 고시위원장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지안 스님이 산사의 생활 문화에 관한 책을 썼다. 본인의 40여 년 절집 생활에 대해 반조를 거듭해 정리한 34가지 이야기 속에 산사 생활의 정수를 오롯이 담았다.

기침에서 취침으로 이어지는 산사의 하루 풍경과, 출가부터 다비까지 건너가는 스님의 일생을 본인의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출가를 설명하면서는 본인이 출가를 할 때 보았던 풍경과 지녔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출가의 의미를 짚어 내고, 용맹정진을 말할 때는 은사 스님이 금강산에서 목숨을 걸고 정진에 임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그려 내는 식이다. 덕분에 독자는 왜 절집의 하루가 그렇게 짜여 있고 스님의 삶이 그렇게 진행되는지를 마음으로 공감하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산사에서 하루를 보내는 듯, 스님으로 한평생을 사는 듯 말이다.

절에서 소를 잡는다?

산사는 수행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곳이다.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일과를 모두 수행이라고 보면 된다. 예불이나 기도, 경전 공부와 참선은 물론이고, 공양(식사)을 할 때도 음식이 수행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며 말을 그쳐야 하는 등 수행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어느 암자 대들보에서는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을 들어오지 말라.”고 쓰여 있는 글이 발견되기도 했다. 잠을 잘 때조차 수행을 멈추지 말라는 이 글에서 수행에 임하는 스님들의 각오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느낄 수 있다.

산사에는 ‘대중이 소를 잡자면 소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 한 사람 뜻이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면 여러 사람의 수행을 방해하기 쉽기 때문에, 산사에는 언제나 대중의 뜻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육식을 금하는 우리 산사에서 대중의 뜻이라면 소라도 잡아야 한다는 뼈 있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이다.

산이 사람을 키운다

우리나라 스님들은 90일씩 1년에 두 번 일정한 처소에 모여 출입을 자제하고 정진에 몰두한다. 이를 ‘안거’라고 하며 일반적으로는 수행 깊이를 더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만큼 중요한 안거의 의미가 “그 기간 동안 인간의 그릇된 업행이 멈춰지는 데 있다.”고 본다. 안거 기간 동안 몸과 말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절제되어 인간성이 순화된다는 뜻이다.

산사 생활의 핵심을 순도 높게 보여주는 안거는 우리가 왜 산사에 끌리는지를 보여준다. 누구든 일단 산사에 들어오면 바깥세상과 분리되는 경험을 한다. 수행을 위해 마련된 계율로 돌아가는 산사에선 바깥세상에서 하던 행동 습관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 계율에 따라 몸과 말과 마음이 자연스레 절제되고, 그렇게 욕망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우리는 잊고 있던 순수한 나를 만나게 된다. 더군다나 산은 욕망을 부추기는 자극이 거의 없는 청정한 공간이어서, 산사에 든 사람은 바깥세상에서보다 마음 흔들림 없이 수행에 전념하기 수월하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은 산을 “천연의 대사원”이라 불렀다. 산은 아름다운 포기, 충만한 기쁨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선 누구나 삶을 깊이 돌아본다.

직접 체험하는 듯 생생한 사진 61컷

우리가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는 고요한 산사 전각의 기둥에 기대서서 저 멀리 산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풍경 소리를 들으며 처마 끝에 걸린 구름 한 조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새벽 산등성이로 피어오르는 안개,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단아한 석탑, 법당에 모신 부처님과 산사를 수놓은 연등의 물결 등 산사에는 우리를 내면 깊은 곳으로 이끄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 결정적인 정적의 순간들을 포착한 61컷의 사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그 울림이 깊어, 사진을 보는 순간 사진 속 멈춤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어쩌면 시간을 잊는 그 찰나 속에 우리가 산사 생활에서 찾고자 하는 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광출판사 / 256쪽 / A5 / 1만 5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2012-08-07 / 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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