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주 지음 《초기 선종 동산법문과 염불선》
《대품경(大品經)》에 설한다.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 이것을 佛을 念하는 것이라 이름한다.” … 즉, 佛心을 念하는 것을 이름하여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이라 한다. 心을 떠나서 따로 佛이 있는 것이 아니며, 佛을 떠나서 따로 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염불(念佛)이란 곧 염심(念心)이며, 구심(求心)이 곧 구불(求佛)이다. - 《입도안심요방편법문》 중에서
대저 수도의 체를 말한다면 자심의 당체가 본래 청정하며, 불생불멸하고, 분별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성이 원만한 청정심이라는 이 지견이 곧 본사(本師)이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 《수심요론》 중에서
염불 법문은 원시불교에서부터 설해져 왔고, 교의의 진전에 따라 여러 차원의 행법이 펼쳐졌다. 근래는 염불선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널리 유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염불선이 어떠한 행법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뚜렷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듯하다.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는 중국선종은 제4조 도신대사와 제5조 홍인대사의 이른바 동산(東山)법문에서부터 염불법문을 펼쳤는데, 그 내용은 방편의 칭명(稱名) 염불과 염념상속(念念相續)의 행 내지 관행(觀行)으로서의 염불행을 아우르면서 궁극에는 달마대사의 능가선(楞伽禪 : 《능가경》의 禪旨에 의거한 선)에 의하여 성취하는 길을 개시(開示)한 것이었다. 그래서 ‘염불’이 아니라 ‘염불선’이라 할 때는 능가선으로서의 염불선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뜻을 도신대사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과 홍인대사의 《수심요론》, 《능가사자기》에 전하는 《능가인법지》의 글 등에서 뚜렷이 살필 수 있다.
본서에서는 1세기 전 돈황에서 새로 발견된 위의 법문들의 원문을 국내 최초로 역주 해설하면서 능가선으로서의 염불선이 어떠한 행법인가를 자세히 해설하고자 하였다. 능가선은 초기 선종기에서부터 난해한 법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따라서 본서에 어려운 법문이 나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법문의 논리를 따라 들어가면 이치로 들어가는 길(理入)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서울 도봉구 도봉동의 광륜사 요청으로 계간 <광륜(光輪)>에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연재된 것을 수정 보완하였고, 강릉 성원사 주경스님(2010년 입적)의 요청으로 집필한 《염불선이란 무엇인가》를 후편으로 붙여서 본서의 결론 내지 요약, 후대의 전개사를 기술한 것으로 하였다.
무엇이 최상승 염불선인가?
근래 ‘염불선’이란 용어가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행법인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뚜렷이 알지 못한 채로 설해지고 행해지고 있다. 여러 경론에서 염불선이라 칭해질 수 있는 여러 행법이 설해져 있기 때문에 어느 것만 염불선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소승에서 설하는 염불선이 있고, 대승에서 설하는 염불선이 있으며, 여기에서 다시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모두 논급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단지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여 이루어진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에 대해 설명하는데 머무른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초기 선종의 법문에서 보이는 염불선이 최상승의 원만한 염불선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선지(禪旨)가 심오하고 현묘하여 올바로 알아 행하는 이가 드물게 되고, 나중에는 왜곡 내지 곡해되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바가 있다.
따라서 저자는 먼저 초기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의 뜻을 밝히고, 후대에 다른 방향으로 엇갈린 모습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진정한 염불선이 정립되어 널리 유포되길 바라는 것이 저자의 원력이다.
“초기 선종의 달마선 선지(禪旨, 禪理)가 동산법문을 통하여 더욱 자세하고 친근하게 여러 대중에게 베풀어졌다. 동산법문을 통하여 달마선의 가르침이 중국과 한국ㆍ일본 등에 널리 유포될 수 있었으며, 선불교 중심의 불교사가 전개되게 되었다. 특히 동산법문은 왕생염불이나 염불관과는 달리 대승경론에 입각하여 염불은 곧 佛心을 念함이고, 그 佛心은 無相이고, 불가념(不可念)임을 창도하였다. 이른바 염불선이란 바로 이러한 선을 말함이고, 不可念(無念)의 선인 달마선이 바로 염불선이다. 후일 이러한 뜻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게 되어 여러 이질의 선들이 나와 유행하게 되었다. 염불행만 들어가면 모두들 염불선이라 하고 있으나 초기 선종에서 설한 본래의 염불선은 그러한 행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승의 깊은 理法을 자심에서 了知하지 못하면 행할 수 없는 것이 초기 선종의 염불선이고 동산법문의 요지이다.”(203p)
분별 떠나 무심함이 곧 진정한 염불!
초기 선종에서 설하는 염불선은 自心이 즉심(卽心)에 佛임을 알고 행하는 선법이다. 당념 당처의 心性이 不可念이고, 無心이며, 無相, 無住, 無生, 無爲, 心不起임을 먼저 뚜렷이 알아야 행해질 수 있는 선법이다. 마음을 어떻게 조정하려는 행이나 어떠한 대상에 전념하는 행이 아니라 당념 당처의 卽心에서 본래 無心임을 알아 卽心에 無心하는 행이다. 自心의 그러한 心性이 곧 佛心이고 自性佛이다. 佛을 念함은 바로 그러한 佛心을 念함이고, 佛心은 不可念인지라 아무데도 念하는 바 없이 있는 것, 즉 마음을 아무데도 둠이 없이 있는 것이 곧 진정한 念佛이고 염불선(念佛禪)이다.
이 행은 반드시 卽心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에서 어떠한 행을 지어 가는 행은 잘못이다. 그 眞心은 본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法爾自然)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별 떠남이 곧 眞如인지라, 분별 떠나 무심함이 곧 진정한 염불이다. 無心한 가운데 경계에 처하여 견문각지(見聞覺知) 하면, 견문각지에 자유자재하게 된다. 이것이 원숙해지면 견문각지가 한없이 넓고 깊어져 지혜의 바다가 된다. 즉 후득지(後得智)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후대에는 선종 초기의 이러한 염불선 선지가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였다. 왕생염불문과 겸수되는 가운데 여러 이론(異論)이 펼쳐지기도 하였고, 간화선의 유행 영향으로 염불을 화두삼아 念念相續하거나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하고 참구하는 이른바 참구염불도 주창되었다. 이러한 행은 초기 선종의 염불선에서 한참 벗어나고 어긋난 행이다.
염념상속(念念相續)의 행은 수행의 공통사항이지만 어떠한 상태로 염념상속 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마음에서 어떠한 대상을 향해 집중하며 염념상속하는 행은 아직 최상승선(달마선)의 禪旨(禪理)를 알지 못하고 하는 행이다. 그러한 心地법문의 禪理를 모르고 그렇게 전념 일변도로 나가는 행은 많은 폐해를 낳게 된다. 대승의 수많은 경론과 초기 선종의 법문에서 다각도로 自性佛의 법문을 간곡하게 펼친 이유를 명심해야 한다.
비움과소통 / 256쪽 / A5 / 1만 3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